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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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탐방 | 동문탐방 34호 /세상을 다시 그려내는 직업,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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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01:42 조회1,7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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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디렉터라는 직업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아트디렉터는 주로 광고 분야에서, 공간과 비쥬얼을 책임지고 촬영팀, 카피라이터, 포토그래퍼 등의 제작진과 함께 초기 스토리보드부터 온 에어까지의 과정을 지휘하는 멋진 직업입니다.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스케쥴 변동이 심하고, 뛰어난 능력을 요구받는 직종이기도 한데요. 우리나라에는 30명도 채 안 되는 아트디렉터가 있고, 그중에서도 활동 중인 A급 아트디렉터는 5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중 한 분이 저희 금속조형디자인과 96학번 이수정 선배님이십니다. 우리는 아트디렉터의 세계에 대해 배우고자 이수정 선배님께 연락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선배님은 정말 바쁜 일정 중에서 가까스로 시간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12월 26일 눈이 아주 예쁘게 내리던 날, 우리는 강남의 학동역에서 선배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듯 살가운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신 이수정 선배님은, 아직 소녀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주 털털한 성격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논현동의 예쁜 브런치 카페로 우리를 데려가신 선배님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보여줄 것이 조금밖에 없다며 미안해하셨지만, 선배님이 가져오신 각종 자료에 놀라운 볼거리들이 너무 많아 우리가 준비한 질문지가 무색해질 정도였습니다. 아트디렉터는 상상 이상으로 아주 멋진 직업이었습니다. 누구나 TV를 통해 한 번쯤은 보았을 현빈의 삼성 스마트 TV 광고, 이제훈의 미러팝 카메라 광고, ‘단언컨대’로 유명한 이병헌의 베가 스마트폰 광고까지 모두 선배님의 손을 거친 결과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만큼 아주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15년 가까이 이 자리에 있으셨던 선배님은 학창시절 야간작업으로 밤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개인 시간이 거의 없어 카메라감독인 결혼 5년 차 남편분하고도 두 달 만에 보는 일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좋아하니까.”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시며 활짝 웃는 선배님의 얼굴에서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수정 선배님은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스스로 개척하신 대표적인 커리어 우먼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주 소극적인 성격이었고, 보수적인 경찰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원하는 꿈을 찾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강원도 출신이었던 선배님은 여자는 집 밖으로 멀리 나가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뜻대로 강릉대학교 이공계를 수석 입학했으나, 대학을 다니면서 세상에 대한 눈이 더 트이게 되자 스스로 자퇴서를 내고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께 시위했다고 하셨습니다. 딸의 단호한 의지에 아버지께서도 결국 기회를 주셨고, 선배님은 최고의 미대에 입학하겠다는 목표만으로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입시 미술에만 매달렸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질까요, 결국 선배님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당시 여학생으로서는 늦은 출발이었지만 꿈을 찾아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선배님은 전공인 금속 작업도 좋아하셨지만, 우연히 소규모 무대 공간∙미술 동아리에 들게 되면서 적성을 찾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외부 연극 무대나 축제 무대를 꾸미는 일을 하면서 무대 관련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 당시에는 그런 직종의 루트를 찾기가 어려웠던 터라 대학원 역시 금속공예로 진학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선배님은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시게 됩니다. 이정재∙전지현 주연인 이현승 감독의 영화 ‘시월애’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소품인 우편함을 제작하게 되신 겁니다. 2000년도 작품이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인지라 우리 모두 “아~”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선배님은 금속과 영화 중 어떤 것을 직업으로 선택할까 고민하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와 광고계는 보수도, 사람들의 인식도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배님께서는 결국 좋아하는 일을 택했고, 대학원을 과감히 그만둔 후 필드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드라마 같은 선배님의 성공기에 견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현재 하시는 일 역시 드라마틱한 직업이었습니다. 집 한 채를 통째로 지을 뿐 아니라 텅텅 빈 공간에 상점가 거리를 만들어 내고, LA의 도로를 베를린의 도로로 바꾸어 버리는 등 엄청난 스케일의 인력과 기술,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몇 초면 스쳐 지나갈 가죽 공방 세트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있어, 옷에 붙는 사소한 라벨부터 가구의 낡은 텍스쳐까지 일일이 신경 쓴다는 섬세함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삼성 스마트TV 광고 시리즈 중 화면에 자세히 잡히지도 않는 12세대 아파트를 담아내기 위해 정말로 열두 채의 집 안을 지었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먹던 것도 멈추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처럼 광고는 워낙 대규모로 급하게 진행되는 일이라 현장에서도 정신없지만, 그 이전 과정에서 회의와 프레젠테이션이 정말 많아, 끊임없이 배우고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민감한 직업이라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묻는 우리의 질문에, 선배님은 공간과 인테리어는 공부랄 게 따로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 주셨고, 어떤 직업이든 항상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또한, 한 뼘의 길이, 양팔의 너비 등 각자 자신의 몸을 통해 기준점을 만들고, 많이 만져보는 것이 바로 공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선배님은 아트디렉터 일을 하던 초기에는 어느 장소에 가기만 하면 팔을 벌려 벽의 너비를 재는 등 엉뚱한 직업병까지 있었다고 말하며 웃으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카페 바닥을 가리키며 “콘크리트에 에폭시로 마감한 거야.”라고 단번에 재료를 맞추셔서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또한, 선배님을 통해 프리랜서의 세계가 얼마나 혹독한지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정해진 업무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일을 찾아 능력을 보여주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언제나 치열하다고도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워낙 거칠어서, 원래 수줍음 많던 선배님마저도 광고계 현장에서 일하시다 보니 성격까지 바뀌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더군다나 선배님은 디렉팅을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항상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있어야 했고, 다 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100명 이상의 스태프들을 보며 몇 번이고 다시 힘을 내셨다고 합니다. “처음엔 자신만만했다가 하루 이틀 일하고 도망치는 사람도 많아요. 이건 책에서나 배울 수 있는 이론이 아니거든. 실수 하나에 바로 욕을 먹는 현장이니까. 청소와 잔심부름 같은 가장 밑바닥일 때 막내 일을 못 참는 사람들도 많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배님께 우리는 다시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어떻게 견디셨어요?” 그 뻔한 질문에, 다시 또 한 번 “좋아하니까요.”라고 대답해주시는 선배님이 정말 멋지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선배님이 해 주신 이야기는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조언은 엘리트 의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필드에 나가면 홍대 미대라는 자부심에 너무 취해서 오히려 좋은 학벌이 걸림돌이 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배님은 누구나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력과 경험이 적힌 종이 낱장이 아닌,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일 수 있는 열정과 성실로 맡은 일을 대하라는 선배님의 목소리에는 후배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봐요. 지금 학교 다니면서 했던 모든 일이 무의미하고 바보 같다 생각되어도, 언젠가는 다 영양분이 돼요.” 작은 톱니가 맞물리고 맞물려서 큰 톱니를 돌게 한다는 선배님의 뼈 있는 말씀은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노는 것도, 놀 거면 차라리 정말 기억에 남을 만큼 열심히 놀아야 해요.” 이어서 덧붙이는 말씀에 다시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눈과 귀, 입까지 즐거웠던 대화 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에도 선배님은 다른 미팅 건으로 전화를 받으며 분주하게 자료를 챙기셨습니다. “내 소원이 하나 있다면 진짜 핸드폰도 끄고 아무 일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잠만 자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선배님이셨지만, 우리를 배웅해 주시면서 회의 장소로 급히 이동하시는 뒷모습은 정말 빛이 났습니다.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직업에 온 열정을 쏟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수정 선배님을 보면서, 성공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려주신 이야기, 보여주신 자료가 정말 많았지만 이 한 편의 기사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바쁜 스케쥴 속에서도 후배들을 위해 알찬 시간을 만들어 주신 이수정 선배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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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이수정

crystal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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