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동문카페

게시판 | 안녕하세요. 현광훈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01:45 조회4,058회 댓글0건

본문

문득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은 얘기가 떠올라 오랜만에 로그인을 했습니다.

00학번으로 입학한후 작년까지 꾸준히 학교에 들락날락 했습니다.
군대갔을때 빼고는 지금이 가장 오래동안 학교를 떠나있는 기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 한해동안 다른학교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금속작업하는 작가들이요.
학교에 있을땐 모르고 살았었는데 나와서 보니 금속 작가들이 활동하는 세계가 또 있더군요.
그 전엔 우리과 선후배들만 아름아름 알고 지냈었는데 다른학교 출신 작가들과의 대화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우리과의 정체성입니다.
이제는 해묵은 논점이 되어버린 옛날 이야기인것 같지만, 제가 입학한 2000년도에도 그랬고 
14년이 지난 지금도 정체성이 안보이는 과도기 인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과도기가 지속되서 그냥 그대로 수긍하면서 사는건지, 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과에 대한 정체성을 못찾은것인지..그게 참 궁금해졌습니다.

얼마전(?)에 과제전과 졸전을 보고 왔습니다. 간만에 학교에 들렸더니 모르는 얼굴도 많고 작업들도 많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작업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다양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돋보이지만, 생산이나 상용화 시각에서 바라보면 문제점들도 많고 비합리적인 프로세스가 많이 보여서 안타까웠고, 금속작업 측면에서 보면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다양한 작업들을 볼수 있어서 좋았지만 마감 퀄리티가 떨어져서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우리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구한 운명에 놓여있다 생각합니다.
편의상 금속과 디자인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물론 둘다 끌어안고 가는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둘다 똑같은 비중으로 끌고가긴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혼란이 가중될뿐이죠.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하나를 버리는것이 아닙니다. 어느것을 더 비중있게 생각할것인지 어떤것이 더 합리적인지를 논의해봐야하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우리과는 디자인에 비중을 많이 두고있는것 같습니다.
실 제작의 퀄리티보다는 아이디어의 중요성과 그것을 어필하는 PR능력, 렌더링과 도식화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죠. 학생들이 손으로 직접 금속을 두들기고 땜해서 붙이는것보다 산업프로세스를 이용하면 훨씬 고퀄리티의 디자인제품이 나올수 있기 때문에 손기술을 많이 배제하는 편입니다. 또한 금속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요. 풍부한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 입니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디자이너를 양성하기에 적합한 프로세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은 우리과는 무엇이든 실제로 만들어야한다는 꼬리표가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산업프로세스의 적용과 타재료의 혼합은 디자인을 떠올리는데는 효과적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제작할때는 접근성이 어렵습니다. 졸전을 위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금형을 만들고 사출 프로세스를 적용하기도 어렵고 유리나 천 종이 등 타재료를 다루기에는 그 기술이 턱없이 부족해서 퀄리티가 조악하기 일수입니다.
물론 이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아이디어와 렌더링에서만 끝난다면 더 집중할 수 있고 더 좋은 평면의 결과물의 나올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면 산디과와의 차별성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디자인에 올인했을때 산디과보다 우리가 가질수 있는 이점이 무엇인가? 금속과 타재료들을 실제로 다뤄보고 그것을 디자인과 적용할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지요.
디자인을 비중있게 선택했을때 우리의 출발점은 다양한 산업프로세스의 접근성에서 시작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아이디어의 전개과정 이후에 진행되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충돌을 완화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혹은 둘다 소화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배출해야 우리과의 장점을 살리면서 디자인에 충실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업프로세스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RP, 머시닝 등 산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프로세스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새롭게 개발되는 기술에 대한 촉을 곤두세우고 민감하게 반응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접근하기 쉬운 레이져커팅이나 스피닝, 밀링선반에 머물러서는 앞서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디자인보다 금속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속작업이 쉽지는 않죠. 망치질하고 불쓰고 스케일이 조금만 커져도 무겁고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과 돈 들여서 만들고 과제 검사 받고 나면 버려지는 그것의 반복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게 힘들고 어렵다고해서 다른 쉬운길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바와같이 지금당장 접근이 쉬워보이는 디자인을 선택하더라도 결국은 어려운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둘다 어려운 길이라면 난해하고 어려운길보다 고생하더라도 속편하고 어려운길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힘들게 작업한 결과물이 과제검사 이후 혹은 졸전이후 버려지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쓸모있는 완벽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버려지는것이지요. 퀄리티의 문제입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유용하고 완벽하다면 누군가 구입을 하겠지요. 판매가 되지 않더라도 직접 본인이 사용해도 됩니다.
내가 만든것이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어지고 그에 합당한 가치를 환산받을때 보람이 발생하는데, 그것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계속 미완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를 반복하다보니 재료비와 노동력이 버려지는것에대해 무뎌지고 무언갈 만드는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과제검사용 졸업용 부산물을 만들어내는데 급급해지는것이지요.
작고 단순한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말고 좀 더 단순하게 내가 만들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그것을 만드는데 부터 시작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정점을 찍고 와야지요. 전통기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업프로세스의 장점을 이용하면서도 그 결과물 이상의 퀄리티를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조합이냐가 중요한것이지요.
자신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만든것이 사용되는 보람을 느낄때 아이디어는 더 무궁무진 해질것입니다. 생각이 단조로운 이유는 우리과의 특성상 그것을 어떻게 만들까를 동시에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만들수 있는 손이 준비되어있다면 고민 자체가 즐겁겠죠.
또한 높은 퀄리티의 완성을 한번 경험하고난 사람이라면 어떤 분야 어떤 재료 어떤 제품이든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과제검사와 학점에 쫒기는 그런 원동력 말구요.

글을 쓰다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뭐라 떠들었는지 둘러볼 새도 없이 완료를 누르고 나갑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생각을 더 정리해서 다시 써볼수 있겠지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