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 미술관의 디자인 전시, 흥행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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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01:28 조회3,7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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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3월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는 당시 디자인 전문지의 편집자로 있던 나로서는 참으로 뜻 깊은 전시였다. 그때까지 디자인 전시는 주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처럼 디자인으로 특화된 극소수의 전시장, 또는 코엑스와 같은 대규모 산업 박람회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전설적인 100개의 의자들을 서울을 대표하는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트라의 의자 포스터는 디자인 전문가, 특히 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비트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요 의자 224개를 한 장에 모두 보여준 이 포스터는 20세기 의자 디자인의 역사를 압축해놓은 좋은 정보 지도다. 아울러 이 포스터는 의자가 존재감 없이 쓰이다가 버려지는 하찮은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기술의 혁신과 시대의 조형정신을 담은 중요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마치 마르셸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놓는 순간 그 변기가 예술작품이 된 것처럼 의자 하나 하나에 조명을 비추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에서 촬영한 뒤 질서정연하게 배치함으로써 이 의자들은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포스터로만 봤던 그 실물 의자가 한국에 왔으니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디자인 전시도 대중의 곁으로 가는구나 하고 큰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이 전시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유명하고 전설적인 의자들이 왔는데, 왜 사람들이 보러 안 오지? 의아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순진했던 생각이다. 그 의자들이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아주 극소수였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남들에게 자랑하지 못하는 자기 집안을 꾸미는 일에 큰 투자를 하지 않듯이 가구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가구와 같은 생활 속 물건을 통해 가치를 느끼는 단계로까지 아직은 성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품격 높은 디자인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것은 의미가 있었다.
덕수궁미술관의 <까르띠에 소장품전>, 바우하우스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첫 전시인 금호미술관의 <유토피아, 이상에서 현실로전>, 예술의전당 <디자인, 일상의 경이전>, 대림미술관의 <20세기 프랑스 실용주의 디자인의 중심, 장 프루베 회고전> 등이 비트라 의자전 뒤에 개최된 미술관의 주요 디자인 전시들이다. 그밖에 좀 더 작은 규모의 전시 공간에서 이탈리아의 가구와 멤피스 운동, 북유럽 가구, 일본의 현대 디자인, 핀란드 공예∙디자인을 조명하는 전시들이 있었다. 서울디자인코리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디자인올림픽과 같은 박람회 성격의 대규모 전시에서도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20세기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들이 있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디자인 전시회가 열리고 대중매체들이 디자인을 빈번하게 다루면서 디자인 전시가 흥행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 정점에 올해 초에 끝난 디터 람스 전이 있다. 대림미술관에서 이 전시를 개최한다고 했을 때 나는 비트라 의자전 개최 때만큼이나 흥분했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가전제품의 표준을 만들었던 디터 람스와 브라운의 제품을, 도록에서만 봤던 그 전설의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흥분과는 별게로 전시 흥행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디터 람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로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지만, 한국에서는 디자이너들조차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4만 명이 넘는 관객이 전시장을 다녀갔다. 게다가 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이 잊혀진 디자이너를 조명했다. 그가 이야기한 ‘디자인 10계명’은 한국 디자이너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더구나 애플 디자인이 디터 람스의 브라운 제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시는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다. 브라운의 디터 람스와 애플의 조나단 아이브를 비교하는 블로그 포스트가 나올 정도였다.
디터 람스 전시의 흥행 성공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일반인들도 이제 디자인은 전시장에서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디자인의 가치를 느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옷과 가방, 시계, 자동차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과 계급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것들은 모두 가지고 다니는 것이므로 금방 눈에 띈다. 바로 그 점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반면에 집안에 두는 가전제품과 가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집안의 물건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임을 깨닫고 있다. 패션에 대한 관심과 함께 리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또 누구나 제품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얻고 있다.
이처럼 리빙에 대한 늘어난 관심은 카페문화가 주도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카페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커피와 차의 맛만큼이나 그 카페의 성공을 크게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찰스 & 레이 임스, 아르네 야콥슨, 한스 베그너, 필립 스탁, 론 아라드 같은 디자이너들의 의자와 테이블이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전파되었다. 가구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이 의자의 형태를 보고 누구의 디자인인지 인지하는 시대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그리고 오리지널 의자를 갖고 싶다는 욕구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불과 5년 전과 견주어볼 때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점들이 미술관의 디자인 전시시대를 밝히는 징후들이다. 뉴욕의 모마(MoMA)는 올해에만 4개의 디자인 전시를 개최했다. 같은 도시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최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회고전에는 3개월 동안 무려 66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프랑크푸르트 응용 미술관은 오늘날 가장 창조적인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애플의 조나단 아이브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21세기에 미술관의 디자인 전시는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김신 / 대림미술관 부관장)
출처 http://daljin.com/2004/_main/special/contents/contents.detail.php?code_special=F02&code=S02300&n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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