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탐방 | 동문탐방 42호 /가르친다는 것은, 홍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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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01:47 조회3,1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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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그리고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느냐는 아무도 알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그동안 많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우리를 가르치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교사 홍승일 선배님이십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봄날, 우리는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 교정에서 선배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서양화과 78학번이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휴학을 했어요. 그리고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했고, 87년도에 대학원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86년부터 예고에서 실기 강사로 처음 일을 시작했고, 예원학교로 옮겨 전임 교사로 근무하다가 다시 예고로 돌아와 강사가 아닌 전임교사로서의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2000년부터였으니 교직에 15년 정도 있었네요.
Q. 교직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사실 처음부터 교사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사적인 시간과 작업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보다는 얽매이는 것이 적은 강사가 더 좋았죠.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작업보다는 돈을 버는 것에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는 순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고, 때마침 전임 교사 자리가 나서 교사를 계속하게 되었죠. 수입은 좀 줄어들겠지만, 전임 교사를 맡으면서 작업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원래는 좀 힘들더라도 작가로 남는 어려운 길을 택했어야 하는데, 첫발을 쉬운 길로 내딛다 보니 계속 교직에 남게 되었네요. 우리 때는 지금처럼 다른 과목을 들을 만한 게 없어서 모두가 교직 과목을 들었어요. 요즘에는 성적이 상당히 우수해야 교직 이수가 가능하다면서요? 하지만 그때는 딱히 들을 게 없어서 들었죠. 원래 교사가 되려는 생각으로 들었던 건 아니에요.
Q.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가르치는 덕목은 무엇인가요?
A. 원하던 대로 작가가 되는 성공적 길을 걸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은 정말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는 것이에요. 현장에 남아서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지속해 나가는 것,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 같이 활동했던 사람 중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이불, 최정화 같은 작가들이죠. 지금 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저도 계속 그 현장에 남아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죠. 아무래도 이렇게 내가 아쉬웠던 점이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은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자기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얘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Q. 예술고등학교 아이들이 일반고등학교 아이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또, 예술고등학교 교사로서 선배님만의 팁이 있다면?
A. 일찍 자기 재능을 살려서 미술과 관련된 작가, 디자이너 이쪽으로 마음을 이미 굳히고 온 학생들이 많으므로 그런 면에서 가장 다른 것 같습니다. 일반고에서는 선생님들께서 어떤 학생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제대로 알 수 없어서 그런 점이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는 당연히 미대를 가서 작가 혹은 디자이너로 남을 학생들이기 때문에 일찍 진로가 결정되어 있고 그런 부분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아는 것이 일반고와는 다른 점이죠. 당장은 학교에서 서울대 많이 가는 걸 우선으로 여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학생들이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현장에서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가르칠 때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지도하는 편이에요.
Q. 선배님이 생각하는 예술고등학교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A. 우리 예고 같은 경우에는 미술과뿐만 아니라 음악과, 무용과도 있어서 서로의 연주회나 공연을 보고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같은 성향의 아이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영향을 보고 배울 수 있잖아요. 실제로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주변 사람들이 제가 어떤 직업이나 일을 쉽게 저지르는 성향을 부러워하곤 했어요. 저에게는 예고의 분위기 속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도 말이죠. 흑인들이 체질적으로 그러하듯 예고에서도 이런 고유한 분위기 속에서 인재들을 키워가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다니는 홍대에서도 교수님이 많이 가르쳐주시겠지만, 학교의 자체 기류도 학생들의 성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나요? 홍대만의 어떤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작가가 많이 나오는 등의 특성을 가진 게 아닌 것처럼, 예고도 그렇답니다.
Q. 선배님의 교육철학은 무엇인가요?
A. 거창하게 교육철학까지는 없고,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란 교육에 의해 나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오는 것이에요.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정보도 접하고 생생한 경험도 하고 많이 느끼게 해서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것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방임 스타일의 교수님이 계셨는데, 저는 오히려 달달 볶고 과제 내주고 이런 것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팔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똑같이 자유를 줘도 맘껏 노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열심히 해서 이후에 결과를 두고 교수님과의 피드백을 통해 실력을 발전시키는 친구들도 있죠. 이런 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율성을 최대한도로 배려해주고, 길을 찾는 과정을 선생님들이 유도하기보다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교육입니다.
Q. 교사로서 일하면서 특별히 힘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요. 아이들과 이야기해서 교감이 되면 그런 면에서 보람이 있어요. 요새는 다들 알아서 하니까 그런 면에서 힘든 건 없지만, 오히려 힘든 건 가르치는 것 외의 행정적인 업무에요. 나이스 입력, 추천서 작성, 생활기록부 작성 같은 일이죠. 시대가 갈수록 그런 것들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전산화되면서 오히려 일이 더 많아지고 있어요. 본연의 가르치는 업무에 집중하고 싶은데, 부차적인 일들이 오히려 더 많아지는 것이 가장 힘든 일 같아요.
Q. 홍대 미대 후배들에게 선배님으로서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예전엔 홍대라고 하면 어떤 열정, 에너지 같은 것들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물드는 것 같았는데, 요즘엔 그런 열정이라든지, 홍대만의 분위기가 좀 사라진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나가거나 하는 게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외견상으로라도 덜 느껴져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홍대 미대라는 전통,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바로 홍대만의 저력이기 때문에 후배 여러분들도 그 저력을 자신의 열정과 부합시켜 나간다면 잘 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항상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하고, 충실하면서도 시대를 잘 통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나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느껴지거든요.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생각하거나 시대적 변화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뒤처질 것이 분명해요. 자신이 이 시대 안에서 어떤 인간상이 되어야 하는지 빨리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쌀쌀했던 봄날 저녁 따뜻한 녹차와 함께 한 인터뷰 자리는 정해진 질문이 끝난 후에도 학창시절의 홍대 이야기로 훈훈하게 이어졌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통행금지 시간, 추억의 야외 '술'케치, 끊임없이 새 건물을 짓던 먼지 날리던 캠퍼스... 그 시대를 지나 이제 선배님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재치있는 선배님이자 따뜻한 교사의 목소리로 대해주셔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시간 내주신 홍승일 선배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회화과 78학번 홍승일
http://www.yeg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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