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풀로 만들어낸 기적들 -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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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6:35 조회2,0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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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를 캔버스 삼아 사방에 자신의 이름도장을 찍고 다니는 게
재밌었던 15살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시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었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람객이 되었다. 지금 그에게는 세계의 모든 거리, 건물들이 캔버스이고, 그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만들어진 그들의 이미지를 바꾸다.
15살의 JR은
단순히 파리 거리에서 그래피티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게 즐거웠다. 18살에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사진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게 된 건 2005년 파리 이민자 폭동 때였다. 당시 그들은
이민자에 대한 정부의 부적합한 태도에 격앙된 상태였고,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경찰과 소방관을 공격하고 상점의 물건을 마구잡이로 훔쳤다. 프랑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비친 이민자를 마치 이성을 잃고 날뛰는 멧돼지로 받아들였고, 사회에서 그들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JR의
친구였다. 그가 말하기를 “저는 저 녀석들을 알아요. 전부 다 천사는 아니지만, 괴물도 아닙니다.” 라고 했다. JR은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민자 청소년의 정면 인물사진을 찍어 거대한 포스터를 만들고 파리 시청 앞에 붙였다. 또 한 번의 거리 사진전이 열렸다. 파리지앵은 그동안
텔레비전과 인터넷, 신문에서 보았던 모습과 다른 이민자를 보게 되었다. 언론에 의해서 통제된 이미지가 아닌, 스스로 자신을 표현한 이미지를 본
것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것은 엄청난 인식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JR은 종이와 풀의 힘을
깨달았다.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을 구분할 수
있나요?
1년
뒤, 온갖 언론이 중동사태에 주목하자, JR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곳으로
직접 간다. 실제 상황은 언론에서 접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와 동료가 느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같은 직업을
가진 두 나라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나란히 붙이기로 했다. JR의 팀은 두 나라의 택시 운전사, 변호사, 요리사의 사진을 찍어 분리 장벽 양쪽에
붙였다. 이로써 사상 최대의 불법 예술 전시회 ‘Face 2 Face’가 열렸다. 반응은 어땠을까? 당신은 무장 단체가 납치를 하려 한다거나,
군인이 총을 쏜다거나 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할 것이다. 실제로는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얼굴이 집 크기 정도로
나오는 것이 행복했다. JR과 팀원 6명은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다리조차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진을 본 양국의
사람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어느 쪽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팔레스타인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JR은 종이와 풀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아프리카 최대의 슬럼가 중 하나인 케냐 키베라(Kibera)의 건물들에는 비가 샜다. 이번엔 그들의 얼굴이 하늘을 덮었다. JR의 팀은 키베라 사람들의 사진을 비닐에 인쇄해 지붕에 씌웠다. 사진작품이 비를 막아주는 천장이 되었다. 키베라 사람들에게 예술은 삶 속에 있게 되었다. 그들은 사진지붕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하느님이 날 볼 수 있네."
이들은 NGO도 아니고, 미디어도 아니고, 기업이나 어떤 단체의 후원도 받지 않는다. 단지 예술을 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 작품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사진은 광고도, 언론도 아니다. 이들의 또 다른 프로젝트는 예술로서 왜곡되거나 어떤 이유로든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파리, 리오 데 자네이로, 런던, 뉴욕 등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최근에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그는 스위스에서 이슬람 첨탑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마자 이슬람 사원의 첨탑 사진을 스위스에 붙였고, 이탈리아 남부의 마피아가 종종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에는 체르노빌에서 찍힌 가스 마스크를 쓴 남자의 사진을 붙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세상에 현존하는 어떤 것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예술은 세상을 보는 법을 바꿉니다. 예술은 비유를 만들어 냅니다. 예술이 어떤 점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이 예술을 토론과 교류를 위한 중립지대로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출처 : 에디터 차지은, JR 홈페이지 http://www.jr-a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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