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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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를 통해 바라보는 디자인 - 박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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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5:40 조회1,6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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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세상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디자인, 디자인 노래를 듣습니다. 옛날에 디자이너라고 하면 우선 외계인 취급하던 뭇사람들의 시선도, 이제는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생활 속의 동반자로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말하고 있는 이 ‘디자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정작 디자인이란 화두는 우리 같은 전공자들끼리만 소통되는 전문적인 용어일 뿐,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가장 친한 친구는 물론 우리가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과도 속 시원히 이야기 나눌만한 주제는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통령까지 나서서 당당하게 말하는 ‘디자인’은 분명 디자이너의 ‘디자인’과 다른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누구의 ‘디자인’이 그 ‘디자인’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들의 ‘디자인’과 그들의 ‘디자인’이 같은 대상을 두고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짐작이나 할 따름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의 ‘디자인’과 그들의 ‘디자인’을 키워드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그 실마리를 엮어볼까 합니다. 결국 사회적 이슈에서 뽑은 키워드를 통해 풀어본 디자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 되겠지만, 목표는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나의 직업이 될 디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모이고 모여 디자인이 언젠가는 모두 함께 같은 대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당신은 디자이너입니까? 예술가입니까?


 

일단 당신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있으므로 디자이너라고 합시다. 그런데 디자이너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주얼리회사나 가구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는 선배들은 분명히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패션디자이너 같은 사람들은 예술가 쪽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예 공예작품을 만들어서 전시회를 개최하거나 국내외 디자인페스티벌에 작품을 출품하는 선후배들도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예술가가 아닐까라는 느낌도 듭니다. 공예가라는 말도 있지만 문제를 단순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단 공예가란 말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보기로 합시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유비쿼터스 환경을 조성하고 수많은 공학적 원리들을 활용하는 전자회사의 제품들을 바라보노라면 디자인이란 과학 분야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산업에서 디자인은 과학 분야에서 기술개발이란 용어로 사용되는 R&D(Research & Developnt)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디자인 활동의 범위는 수준 높은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첨단 우주산업에서부터 의류, 가구 등 예술적 감성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 그리고 갤러리에까지 넓은 분야에 걸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래 기술이나 방법을 의미하는 'Art', 즉 예술은 과학처럼 감성과 이성의 균형에 관련된 개념입니다. 그런데 디자인은 예술과 과학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주관적 감성과 객관적 이성은 물론 구현과정을 통한 결과물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예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반면 과학은 자연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은 합리성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감성과 직관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은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과학과 예술은 공통된 것이 없는 대립관계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술은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 미술, 비디오 등과 같은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그것들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며, 마찬가지로 과학은 규명된 개념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와 기계 그리고 기술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전문적인 기술들이 분업화되어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과 과학은 서로 간의 조직적인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술은 천재 개인의 번득이는 재능의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학습과 연습을 통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를 살펴보더라도 그는 모나리자를 그린 예술가임과 동시에 비행기와 전차를 연구한 과학자이기도 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표현활동이나 비행기를 만드는 구현활동은 그에게 있어 별개로 구분되지 않고 기하학, 해부학, 광학과 같이 동일한 과학적 분석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에 대한 표현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숙련된 기능에 대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제작되는 프로세스에 따라 그를 보조하는 직능별 조수들과의 협업활동을 통해 예술품이나 발명품들을 제작하였습니다. 결코 혼자 이루어낸 업적이 아니며,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술은 과학이라는 튼튼한 구조가 뒷받침 되여야 가능한 것이며, 반대로 과학은 예술이라는 개념적 목표가 선행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예술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생활 속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런 기술은 현대사회에서 디자인 기술로써 다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아름다움이 곧 힘이니라


 

디자인은 상품에 조형성과 아름다움을 부여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미학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디자인을 통한 미학적 경험이란 예를 들어 단순한 기계에 불과했던 자동차를 고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나의 개체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상품의 조형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디자인의 미학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기능이나 소재, 품질 등과 같은 기술적 요소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1500년대의 이탈리아에서는 디자인은 미술이 가지고 있는 순수예술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생각의 시각화’에 관련된 일종의 기술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좋은 디자인이란 본래의 의미는 오로지 기능에 충실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19세기 후반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디자인에도 감성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근대에 와서는 새로운 상품을 구현하기 위해 기능을 토대로 조형적 요소를 개발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제 디자인은 상품의 조형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미학적 요소는 물론 기능과 형태를 실제로 구현해내는 기술적 요소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미학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디자인은 과거엔 핵심가치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조기술이나 품질 등 제품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요소들이 점차 평준화되면서 경쟁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력의 비중이 기술적 요소보다 미학적 요소로 더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원천기술의 개발이나 지적재산권의 활용 등도 중요하겠지만, 고객과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미학적 감성까지 아우르는 디자인을 핵심가치로 인식할 수 있다면 기술을 핵심가치로 인식하던 산업경쟁력의 범위를 더 크게 확대할 수 있습니다. 비단 산업경쟁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못을 하나 박는데도 디자인적 요소를 고려하는 등 생활 속 문제해결을 위해 디자인을 적극 활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삶의 질까지 책임지는 국가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조선시대 정조가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강조하자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군사들이 싸움을 할 성인데 튼튼하게 만들어 적을 이기면 그만이지, 왜 그처럼 모양을 내려 하십니까?” 그러자 정조가 말했습니다. “아름다움이 곧 적을 이기는 힘이니라.” 아름다움이 곧 힘이라는 말은 군사력보다 더 센 문화의 힘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화의 힘이란 해당 국가의 예술적 수준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문화적 힘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과학적 기반이 기초되는 예술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예술적 감각이 고루고루 우수하단 의미는 국민 모두가 그림을 잘 그리고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는 등 예술적 가치를 판단할 줄 아는 안목을 바탕으로 생활을 지속적으로 아름답게 하기 위한 의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주변의 소외된 계층을 생각하고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고 미래의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등 인간 중심의 지속가능한 삶을 고려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술적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중심의 디자인 안목이 발전해야 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의 힘이란 바로 국민들이 모두 창의적인 국가의 디자인경쟁력입니다.

 


 

예술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예술이 되는 시대


 

사람들은 예술작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에 대해서도 흔히 ‘예술’이란 표현을 자주 합니다. 유명한 작가가 그린 예술작품이 아닌 것에 “와, 예술이다.”란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만년필, 카메라, 의자 같은 것에서부터 자동차, 비행기,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 또는 건축가들의 감성이 고도의 기술력이 가미되어 완벽한 완성도를 보이는 것이라면 모두 해당합니다. 고객들은 자동차 옆에 그려진 예리한 선 하나하나 또는 헤드라이트의 위치 같은 심미적인 것은 물론 휴대폰의 폴더가 움직이는 각도 또는 예기치 못한 참신한 기능 같은 기능적인 것을 통해 제품을 예술품과 범용품으로 구분합니다. 좋은 디자인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구찌의 핸드백, 듀가티의 모터사이클, 프랑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등이 좋은 예가 되겠지요. 가까이 있는 밥그릇들 중에도 좋은 디자인은 예술이라고 불로도 무방할 것입니다.

 

결국 고객들은 수많은 상품들 중에서 오직 ‘예술품’ 하나만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렇게 상품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가치를 잘 활용하는 분야로 패션, 가구, 주얼리, 도자기 등 공예적 소재와 디자인 기술을 접목시킴으로써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제품들을 공급하는 공예산업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좋은 디자인은 마케팅하지 않아도 잘 팔리지만, 나쁜 디자인은 마케팅을 아무리 잘해도 팔리지 않습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별도의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은 디자인이며, 다시 말하면 최고의 마케팅은 바로 좋은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디자이너


 

상품을 예술로 인식할 수 있는 이런 미학적 경험은 거꾸로 예술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게도 합니다. 예술품 자체는 이미 미학적 감성의 결과이기 때문에 상품으로써의 의미와 기능을 적절히 가미하여 제품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을 창출합니다. 디자이너는 미학적 감성이 풍부한 예술로서의 디자인과 이성적인 합리성을 가진 기술로서의 디자인의 비중을 서로 적절히 넘나들며 창의적인 해석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구체적인 해답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합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적 영감과 과학적 사고는 유기적으로 통합됩니다. 디자이너의 멋진 아이디어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예술과 같은 디자인은 고도의 전문지식들이 협업구조를 가진 시스템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고객들이 상품에서 발견하는 예술의 경지는 디자인을 통해 모든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고객이라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예술로 남는 것들은 하나같이 시대 감성과 걸맞은 미학적 감성과 동 시대의 기술적 완성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들입니다. 그 조화로운 예술혼이 담긴 명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바로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명실 공히 디자이너입니다. 예술이 무엇인가, 디자인이 무엇인가, 특히 공예는 무엇인가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여러분들은 그 시간동안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이며, 좋은 디자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앞의 고민은 학문적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 테니 그동안 여러분들은 좋은 디자인을 세상에 널리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자일

2009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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