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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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형 또는 디자인, 과연 이들은 독립되는가? - 임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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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5:27 조회1,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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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형과 디자인이라는 명백하게 다른 모양의 두 단어를 나란히 두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일이다.

적당히 포스트모더니즘 일곱 자를 순서대로 외우고 조심해서 장르의 해체라는 짤막한 문구를 기억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서로는 글자의 순서 외에는 아는 것도 없고, 따라서 할 말도 없다.

그런데 여기에 공예라는 두 자까지 겹쳐지면 더욱 난감해진다.

일반적으로 혹은 전통적으로 조형, 디자인, 공예 세 가지의 차이는 조형과 디자인은 창작의 영역이 있지만,

비교적 공예는 그러한 부분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조형과 디자인 안에는 이미 공예라는 기술과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공예를 논할 때 항상 붙어 다니는 불굴의 장인정신은 창작하는 아티스트의 영혼을 직접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영혼의 한 부분인 뛰어난 기교와 오랜 노동의 결실을 떠올리게 한다.

조형이 사물과 사건을 주관적인 눈빛으로 부풀리는 시도라면 디자인은 그 생각의 보편성을 찾는 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남다른 외형과 색상 그리고 심지어 특이한 감성까지 기대하는 현시대에서 보편성을 말하는 것은 조형만큼 난해하고 무한하다.

이러한 혼돈의 시작은 항상 예술과 같은 일들을 특별하게 다루려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조형이나 디자인이나 이들은 단지 세상에 널브러진 사물과 사고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을 패러디, 모방, 차용하며 변형되어가는 연속과정이다.

인간은 경우에 따라서, 때론 이러한 과정을 창작이라 추켜세우기도 한다. 

디자이너의 의사소통에 대한 노먼 포터의 글은 조형과 디자인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문장의 끝과 함께 그것은 늘 사라진다.

디자이너의 의사소통은 
언제나 목적이 있어야 하고 
결코 임의적이거나, 공상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자폐적이거나, 자기방어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창조성은 그렇게 촉발되고, 그렇게 정리되고, 그렇게 경험될지도 모르며
또한 자신과의 의사소통에서는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파악 가능한 맥락, 발신자, 수신자를 전제하고 
반드시 경제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전달해야 하며
흔히 쓰이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필연코 분명하고, 충분하고,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필수적이고, 쓸 만해야 한다.
다만, 달리 목적을 더 잘 달성할 수 있다면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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