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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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은 캠벨 깡통 - 성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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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3:53 조회1,4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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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워홀의 작품들은 흔히 팝아트의 대중성에 대한 유쾌함과 자본주의의 가벼움이 맞물려서 그 주제나 표현의 양식이 항상 가볍게 그리고 부담 없이 감상될 수 있다.  마치 아무렇지 않게 끼고 다니는 쇼핑백처럼 간편하고, 시각적 표현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조형적 요소만 담은 작품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부엌에서 봤던 캠벨 깡통이 내가 보는 미술 전공 책의 한 면에서 보게 된다는 것은 즐거운 미술적 충격이었다. 그땐 왜라는 물음보다는 얼마나 잘 그렸을까? 얼마나 똑같을까? 하는 것을 비교하기 위해 캠벨 깡통을 찾아들고 비교해 보기도 했었다. 그 후로 대중적으로 번져나가는 팝아트의 작품들은 너무나 많고 넘치게 되었고 결국 나의 미적 관심을 자극하지 못하였다.

 팝아트에는 마치 한국의 장맛처럼 깊은 맛을 내는 그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 하였다. 그리고 10여년 후 뒤셀도르프의 한 전시장에서 여전히 익숙하고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워홀의 캠벨 깡통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엄청난 크기의 캠벨깡통이 그 포장이 찢겨진 채 서 있었다. 1962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Andy Warhol, Grosse zerissene Campbell's Suppendose- Black Bean, 183 x 137 cm, Düsseldorf Sammlung) 첫눈에는 마치 옷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점점 나의 관념에서는 그 깡통이 본질을 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찢겨진 껍질 사이로 드러나는 얄팍한 양철의 반짝거림이 내보이는 그 깡통의 내면은 깡통의 외면만큼이나 유니카트했다. 그러나 그 깡통은 거친 깡통 표면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것은 포장지에 쓰여 있는 블랙 빈의 의미와 맞닿아서 더욱더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한참을 그 포장지가 찢겨진 캠벨깡통 앞에서 미국의 흑인들의 문제, 인간의 내면의 이중적 고뇌, 그리고 상업자본주의에 상처받는 빈민들의 일상 같은, 도통 깡통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문제들로 고민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미술을 감상이라 한다면 그 순간, 관념은 처음 선입견을 없애고 새로운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와홀의 작품을 처음 대하면서 나의 눈을 자극했던 사실성과 사물성에서 동시대적 이야기를 그려내는 시대의 표현성으로 인식되어진 것이리라. 그리고 2007년 인사동 쌈지에서 워홀의 전시를 했었다. 그곳에서도 캠벨 깡통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깡통은 흥미롭게도 Vegetable Beef 깡통이었고 마치 한쪽 어깨로부터 살포시 껍질을 벗는 듯한 모습이 고혹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이 깡통은 나에게 어떠한 자극을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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