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건축 - 김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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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10:43 조회3,2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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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강사 비트박스의 주인공은 바로 '건축의 이해' 강의를 맡고 계시는 김일석 교수님입니다. 저희 운영팀은 교수님께 건축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자 방학 중 어렵사리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정말 흔쾌히 수락해주신 덕분에 12월 23일 홍문관 로비의 아늑한 카페에서 교수님을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Q.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건축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A. 나는 한국에서 입시를 6번이나 했어요. 그때는 까딱 잘못해서 재수하면 교과서가 바뀌고,
3수를 했더니 수능이 생기고, 4수를 하면 본고사가 부활하고 그랬죠. 한 번도 같은 입시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웃음) 다섯 번째 입시를 할
때 다음 입시를 위해 부모님을 설득할 필요가 있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그게 바로 건축과였어요. 원래 저는 미대에 가고 싶었으나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버지께서 의대를 나오셔서인지 돈벌이가 잘 되는 직업을 강요하셨어요. 지금처럼 학생들이 미대를 쉽게 선택하지
못했죠. 입시를 다시 하기 위해 건축과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장학금도 계속 타고, 점점 재밌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입시를
다시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나를 상담해주셨던 분의 추천으로 유학을 고려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한국에서 한참 유학파들이 이슈가
될 때였는데,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반은 유학을 가지 말라고 하는 때였어요. 왜냐하면, 한참 IMF가 터진 시기여서 유학을 다녀와 봤자 일할
곳이 없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단 프랑스에 2주 동안 배낭여행을 떠나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어요. 대학교 1학년, 어학 공부하는
사람, 대학원생, 박사 코스, 졸업하는 사람,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사람. 이렇게 여섯 명 정도 만나보니 유학을 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나는 건축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당시 한국에는 아직 배경이 잘 되어 있지 않았고, IMF 시기라 다들 순수한 공부가
목적이기보다는 취업이 목적이었거든요. 여행이 끝나고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떠나기 싫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결정했어요. 아, 나는 유학을 가야겠다. 그런데 프랑스 유학이 내 인생의 반전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5년 동안 고작 학부밖에
졸업하지 못하지만, 거기서는 5년 안에 대학원까지 끝낼 수 있어요. 게다가 저는 또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졸업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내가 입시를 6번 했던 것과 상관없이 친구들과 발걸음이 맞춰진 거에요. 새옹지마였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처음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는 많이 당황했어요. 내가 4년제 공부를 제대로 하고 온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아는 게 없었어요.
건축사도 완전히 뚜렷하게 알지 못했고, 그래서 누구누구 작가를 소개하면 하나도 못 알아들었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대학교 공부란 깊이 있는
탐구보다는 많이 흩어 뿌려주고, 학생들이 수습할 수 있게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다음 좀 더 깊이 있는 탐구를 하고 싶다면
대학원에서, 더 깊이 파고들어 한 사람의 테크닉을 완성하고 싶다면 박사 학위에서 공부하면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Q. 건축부터 음악, 미술,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 원천이
무엇인가요?
A. 나는 자료 수집을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모든 이야기를 이미지로 정리하는 습관이 있죠. 그런 습관을
갖게 된 계기가 낙제 때문이에요.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두 번째 연도에 낙제하게 됐어요. 그래서 프랑스인 학생이랑 팀으로 맺어져서 같이 공부하게
됐는데, 공부보다는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그때 그 친구가 교수님이 주신 2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보고서를 읽고 나에게 설명을
해 줘야 둘 다 낙제를 면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관심이 없고, 내 언어 실력으로는 그걸 한 학기 내내 붙잡고 있어야 가능한 거에요. 그렇게
한 달을 미루다가 결국 낙제를 받았죠. 하지만 이대로 한 학기를 그냥 보낼 순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학교 도서관에 갔어요. 도서관에 갔는데
원서를 읽을 용기는 없고, 이리저리 둘러보니까 비디오가 꽂혀 있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건축에 관련된 내용이 스무 개 정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봤죠. 한 비디오당 10번쯤. 그렇게 계속 보다 보니 80% 정도는 이해가 되더라고요. 일단 이미지가 있고, 언어 역시 듣다 보면 들린다고
반복 학습의 효과를 느꼈어요. '야, 이거 재미있는데?'하는 생각에 학교 안에 있는 비디오들을 다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미술, 공연, 조각,
디자인... 사실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면 그 콘텐츠의 양이 3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의 분량과 똑같아요. 영상이란 게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만, 저는 10번을 돌려 보고 또 보고 했으니 책을 공부한 것과 같게 된 거죠.
그렇게 하는 공부에 재미를 느껴서, 결국엔
그런 영상들을 DVD나 CD로 바꿀 수 있는 코덱 장비를 구매하게 됐어요. 그런 후에 학교 안의 비디오를 몽땅 찾아서 구웠죠. 우리 학교에서
찾을 수 없는 비디오 자료들은 정품을 사기도 하고, 학교한테 이런 자료가 있으니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어요. 때로는 대여가 안 되고 도서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자료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몰래 크랙을 깨서 카피를 뜨기도 했죠. 사실 그때 내가 맨날 특이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도서관 사서가 계속 핀잔을 줬지만, 프랑스인들은 아직 일반인들이 영상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않을 때라 내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몰랐던
거에요. (웃음)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돈으로 환산하면 3,00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일부 자료는
현재 수업할 때도 항상 틀곤 하죠. 그렇게 저는 미디어 지식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한 번 보고 말면 아무 공부도
아니지만, 내가 몇 번을 보고 어느 자세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모아온 것이 나에게 큰 재산이 되었어요. 나는 지금도
두꺼운 책 안 봐요. 10분만 봐도 졸리거든. 대신 다큐멘터리 수집에 열의를 갖게 되면서 다양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저장한 거죠.
Q. 추구하시는 건축 스타일이나,
아니면 교수님의 건축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비싸고 고급스럽게 보이는데, 싼 것. (웃음) 나는 그걸
추구해요. 아직은 내가 설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맞춘 건 없어요. 유명한 건축가 중에서도 나이 80 넘어 건물 하나 지은 건축가도 있죠. 사실
건축은 내 돈이 많이 드는 분야에요. 회화보다 돈이 더 많이 드는 게 조각이고, 조각보다 더 드는 게 영화, 영화보다 건축이 더 많이 들죠.
그러니 평생에 하나를 준비할 수도 있는 거지. 베이징 스타디움의 가격이 중국 CCTV 본사 건물의 1/4밖에 안 들었어요. 그렇지만 세련되어
보이죠, 멋지고. 그렇다면 비용절감도 강점이 아닐까요? 사실 1000년 가는 건물은 세상에 없어요. 노트르담 성당도 계속 리노베이션을 거치고
증축을 한 거죠. 오늘날 현대 건축물도, 콘크리트 유효 기간이 150년이라지만 우리나라 아파트도 3, 40년만 지나면 다시 짓거나 보수하잖아요.
유럽 아파트도 100년을 넘는 경우가 없어요. 그렇게 기간을 따진다면 저비용으로 이끌어내는 고급스러움, 그게 바로 효율성의 답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건축을 하고 싶고요.
Q. 건축할 때, 사용하는 재료의 물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은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A. 다양한 예술 재료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죠. 회화 재료도 물론이고요. 조소
재료, 빛에 대한 재료, 전기까지. 자크 헤르조그라고 제가 좋아하는 건축가가 있는데, '건축 위에 패션의 겉감을 얹었다.'라는 평을 듣는
건축가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서 그런 감수성을 배웠나, 알고 보니 어머니가 패션 디자이너였던 거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남는 천
쪼가리를 가지고 놀았다는 거지. 그렇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재료를 다 예술의 재료로, 건축의 재료로 보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재료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야 하죠. 유명 패션 브랜드로 꼼데가르송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꼼데가르송의 특징이 무엇인가 알아봤더니 브랜드 이름대로 유니섹스한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안감 재료를 겉감 재료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는 거에요. 그렇게 오늘날은 재료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많아요. 옛날에는
내장재였는데 지금은 외장재로 쓰기도 하고, 그리고 분명히 속옷 같은 옷도 겉옷으로 입고 다니기도 하고. 그런 다양한 정보는 내 전공, 내
분야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앞서 제가 다양한 분야의 영상을 보고 공부했다고 했잖아요. 재료에 대한 탐구 역시 그렇게 '모든 것'에서
얻을 수 있었죠.
Q. 교수님께서는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하고
싶으신가요?
A.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Mod, 유행을 제공했으면 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타벅스도 2,
3년에 한 번씩 실내 인테리어부터 로고까지 조금씩 변형시키잖아요. 아이덴티티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계속 옷을 바꿔 입죠. 이전에는 그런 변화의
텀이 10년 정도였다면 이제는 2년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건축을 통해 그런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이란 내가,
우리가 머무르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낯설지 않은 변화를 제공하고 싶어요.
Q. 건축은 크기와 규모가 거대한 예술이라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어디서부터 공부하고 어디서부터
보아야 하나요?
A. 제가 수업에서도 많이 이야기했던 건데 휴먼 스케일, 즉 사람이 보는 시선, 거기서부터 보면 돼요.
좀 어렵죠. (웃음)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되죠. 디자인으로 사례를 하나 들어 보면, 내가 지금 의자에 앉아
있지만, 그냥 박스에도 앉을 수 있잖아요? 디자인은 오로지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배려되었느냐'가 중요해요. 인간적인 배려로
눈을 돌려서 보면 의도를 이해하기가 편해요. 박스는 앉는 사람을 배려한 물체가 아니고, 의자는 앉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물체죠. 한국에서는
건축할 때 조감도를 많이 강조해요. 그런데 사람이 날 수가 있느냐고, 사람이 하늘에서 건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잖아요? 그런데
조감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데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건물 허가를 낼 때 투시도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법으로. 그리고 투시도를 위한
금액은 공사 금액에 책정되어 있고 무조건 주게 되어 있죠. 그러니까 우리 눈높이의 시각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게 건축에 대한 선진국의
방식인 거에요. 그래서 건축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불편해서, 우리가 필요해서 짓는다는 철학이 가장 중요해요. 그걸 수용하면 이해가
되는 거죠. 건축은 인간적인 배려에서부터 시작하니까 거기서부터 보아야 해요.
Q.
학생들이 건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 혹은 꼭 감상해 보았으면 하는 건축물을 추천하신다면?
A. 한국에 있는
공간을 굳이 소개하자면 선유도 공원을 가봤으면 좋겠고, 세계로 시선을 돌리면 파리에 있는 에펠 탑을 꼭 가봤으면 좋겠어요. 누구든지 파리로
접근하려면 고속도로에서부터 에펠 탑이 보인다고 해요. 그리고 누구든지 파리하면 떠오르는 게 개선문보다는 에펠 탑이잖아요? 그런 큰 상징적인
건축물에서 오는 감수성 또한 굉장해서, 많은 소설이나 예술 작품에서도 등장하죠. 특히 파리에 대한 영화에서는 에펠 탑이 안 나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감성이 존재하는 오브제를 여러분이 직접 체험해봤으면 좋겠어요. 올라갔다 내려와도 보고, 에펠 탑의
정 중앙 밑에서 위를 한 번 바라봐 보세요. 그럼 한 120에서 150m 높이를 한 번에 올려다볼 수 있는데, 그것도 참 재미있는 구조에요. 그
엄청난 스케일을 그대로 한 번 느껴봐야 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축물이기도 하고요.
앞서 말했지만 선유도 공원도 한 번
가보세요. 계절이 좋을 때 가도 좋고, 아주 더울 때도 가서 지붕이 없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시원해질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한 번
관찰해보세요. 공원에서 얻을 수 있는 휴식은 공원을 즐겨 찾는 사람만이 알 수 있거든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건네준 것이 아닌, 그냥
조형적인 요소에 앉을 자리만 마련되어 있는 휴식. 그걸 한 번 느껴봤으면 해요. 공원 문화는 한국 사람들이 제일 가지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기도
하고요.
추천하는 책은 여기 홍익대학교 건축과의 장용순 교수님이 쓰신 <현대건축의 철학적 모험>이라는 책이
있어요. 1권부터 4권까지 있는데 1권은 좀 쉽고, 2권은 조금 철학적이고, 3, 4권으로 갈수록 조금씩 어려워지지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장용순 교수님이 프랑스에서 건축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신 분인데, 내용이
정말 심도 있어요. 그렇지만 비교적 쉽게, 아주 폭넓게 잘 쓰셨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좀 더 컬러풀한 비쥬얼로 건축을
이해하고 싶다면 진중권 교수의 <이미지 인문학> 1, 2권. 그분의 10년 동안의 논문과 칼럼을 모아놓은 내용이라고 하는데, 제가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어휘력이 정말 훌륭하다는 것. 그리고 확실히 정리를 정말 잘해놓으신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건축만을 위한 책은 아니고,
건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겨울방학 동안 읽을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Q. 건축은 예술성 말고도 공학적인 부분과 안정성도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타협점은 어떻게
맺어지나요?
A. 그건 저로서는 답을 제시할 방법이 없어요. 나라마다 일을 주최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룰이 있어요.
하지만 그걸 꼭 건축 법규라고 할 수도 없죠. 왜냐하면, 그 건축 법규라는 것에 힘 있는 사람의 카르텔이 아주 크게 존재하거든요. 그래서
공모전이 열려도 당선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요. 작가들은 스스로 일에 못 뛰어들죠. 건설자가 있어야만 설계자가
컨택이 되어서 들어가고. 이런 카르텔은 나라마다 다 있어요. 선진국일수록 비합리적인 면이 조금 적을 뿐이지, 아예 없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런
시스템에 잘 맞춰가는 사람이 결국 정치적으로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내가 그걸 못해서 인정을 못 받았다면
거짓말이고, (웃음) 그것도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건축가들은 대부분 이런 수단까지 잘
활용하죠.
프랑스에서 드골 공항이 무너진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였다면 건축가든 시공가든 분명히 누가 잡혀갔을 텐데, 아무도 잡혀가지
않는 거야. 그 이유에 대해서는 프랑스에 있는 시공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똑같이 말해요. 저건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 설계자가 저렇게
했는데 그걸 그대로 한 구조개설사도 잘못이고, 시공할 때 지적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고, 만들어지고 나서도 유지·보수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겠냐는 거죠. 그러니까 모두의 잘못이 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누가 죽으면 한 사람한테 독박 씌워서 '걔가 다
잘못한 거래!' 하지 않는 거죠. 건축은 특히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잖아요. 무너지면 그대로 사람이 희생되니까. 그래서 지켜져야 할 카르텔이
분명히 있고, 버려야 할 카르텔도 있는데, 그건 시대와 나라마다 너무 달라서 한꺼번에 통틀어 말하기엔 적절합 답이 되지
못하죠.
Q. 디자이너 중엔 건축과 디자인 두 분야를 모두 어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A. 그 사람들의 특징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드는 호기심, 그리고 유머와 위트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이야기를 참 잘 만들어요. 상품화도 잘하고. 마케팅은 기본이고 편집 능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죠. 특히 유머와 위트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데, 그걸 잘 갖춘 사람으로 제가 항상 콕 집어 소개하는 스테판 사이그마스터라는 시각디자이너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죠. 작품에도 위트가 넘치고 본인 자체도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하고는 누구나 항상 같이 일하고 싶어
하고요. 사실 디자인과 건축이라는 게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거든. 누가 항상 서브해 줘야 해요.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게 정말 중요하고, 유머와 위트는 이제 개그맨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꼭 갖춰야 할 장점이 되었어요.
Q. 마지막으로 전공을 막론하고 학생들이 건축을 통해 배워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광고와 유행을 넘어서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수업시간에 물어봤는데, 팝방이나 아이튠에서
팟캐스트를 들어본 학생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애들이 멍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픔이나 고통은 어느 순간 내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 모르고 살죠. 아까 말했듯이 건축은 법규로 만들어지고 법규는 정치로 이어지고, 또 건축과 건축이 만나면 그게 도시가
돼요. 그리고 도시는 다시 정치에 연결되지요. 결국, 어디를 개발하느냐는 정치에 달려있고, 내가 내 창문을 더 크게 내고 싶고, 내가 내 처마를
더 길게 뽑고 싶은데 그걸 못하게 하는 것도 법규거든요. 내가 내 아파트를 더 높게 만들고 싶은데 저 아파트가 가려지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
서로의 이익을 조절하고 서로를 배려하게끔 하는 게 법이고 정치잖아요. 특히 건축에서 도시까지 확대되는 것을 이해하고 개선을 원한다면 사람들의
관계를 떠나고서는 볼 수가 없어서 정치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해요. 제2 롯데월드가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도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잖아요? 건축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학문이자 기술이고, 그러므로 학생들이 건축을 통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좀 더 높였으면
좋겠어요.
교수님과의 만남은 건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유용한 팁도 얻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교수님처럼 미디어로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접해보는 것은 금속조형디자인과 학우들 역시 폭넓은 지식을 쌓기 위해 한 번
시도해볼만한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일석 교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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