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교강사비트박스

디자인, 그 다음에 관하여 - 구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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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10:43 조회2,5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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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강사 비트박스에서 모시게 될 분은 저희 금속조형디자인과 4학년 '디자인 비즈니스' 수업을 맡고 계시는 구병준 교수님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셨으며, 네덜란드에서 contextual design 석사 과정을 밟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디자인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셨으며, 홍익대학교 조형대학과 계원예술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디자인 비즈니스'라는 과목이 저학년들에는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만큼, 교수님께 디자인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듣고 싶어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교수님의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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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의 간단한 약력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계기로 학생들을 가르치시게 되었나요?

A. 내 약력이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 하나요. (웃음) 한국에 2005년도에 와서, 3년 정도는 작가 생활을 하다가 가나아트센터에 들어가서 2년 정도 디자인 기획 일을 하게 됐어요. 그 당시에 한국 갤러리는 '디자인을 전시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죠. 그때 저는 한국 갤러리도 디자인이나 건축 쪽으로 손을 많이 뻗어야 한다 생각해서 그쪽 일을 하게 되었고, 외국 디자이너들을 데려와서 소개도 하고, 전시도 하고,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했어요. 한 2012년까지 계속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중간중간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죠. 2008년에는 학생들에게 가구디자인을 가르쳤고, 2009년엔 디자인 매니지먼트나 프로덕트 디자인도 가르쳤어요. 그리고 1년 정도 쉬고 있는데, 여기 홍익대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이렇게 디자인 비즈니스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저희 과도 명칭 상으로는 '디자인과'이지만, 아직 공예적인 특성이 강한 편이라, 산디과나 시디과 같이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하는 학생들과 마인드나 태도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큰 차이는 어떤 점인가요?

A. 그 차이에 있어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죠. 장점은 정말 큰 장점이에요. 다른 디자인과 학생들은 창의적으로 생각하려는 것에만 집중하는데, 공예 베이스의 학과는 기본적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이 장점이죠. 다만 단점은 만드는 것은 되는데, 자기가 만든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정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왜, 누구를 위해 만드나.' 이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디자인은 자기만족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넘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준비가 된 사람이 디자인을 해야 해요. 그런 부분이 약한 학생들이 꽤 있죠. 이런 것을 4학년 때 배우고 후에 작품에 적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다른 학생들이 초기부터 이 내용을 숙지하고 개념을 갖춘 뒤 디자인을 배웠다면 아무래도 그 학생과 차이가 좀 있겠죠. 비즈니스에 대해 배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수업이에요. 학교에 있을 때 열심히 배워 두어야 해요. 오늘날은 경쟁사회고 또 비즈니스란 각자의 노하우이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는 누가 잘 알려주려고 하지 않아요.


Q. 디자인과 비즈니스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인데,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디자인 트렌드뿐만 아니라 경제, 경영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도 반드시 갖추어야만 하나요?

A. 아니요, 전문적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무엇이든지 도움되지 않는 공부는 없죠. 다만 비즈니스란 책으로 공부해서 전부 깨우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몸으로 습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굳이 책을 사서 전문적인 내용을 볼 필요는 없어요. 일상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백화점만 가 보아도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죠. 실제로 우리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가격, 맛, 수량, 내가 이것을 들고 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왜 이 가격대에 이 물건을 택했을까. 그런 일반적인 부분부터 지나치지 말고 생각해보는 거죠. 어떤 행위에는 분명히 그 이유가 있어요. 내가 직접 소비자의 역할이 되어 보아야 구매 과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럼 자기 물건이 시중에 팔릴 수 있을지, 팔린다면 어떤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그게 바로 경영과 경제에 대한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Q.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이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을 언제부터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기 전부터입니다. 기본기를 어느 정도 닦고, 소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난 뒤에 바로 배웠으면 해요. 디자이너는 손이 움직이기 전에 머리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가 왜 만드는지에 대해 알고 제작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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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많은 대학생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그만큼 실패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만약 창업한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비즈니스 마인드는 무엇인가요?

A. 우선 정확한 롤모델이 없기 때문이에요. 아니면 잘못된 롤모델을 따라가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죠. 외국 같은 경우엔 많은 롤모델이 존재해요. 많은 카테고리, 많은 데이터가 있지요. 반면 한국의 디자인 역사는 조금 짧아요. 정말 디자인적으로 디자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진 건 2000년도 이후부터죠. 그렇다면 그 모델을 자기가 직접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외국의 롤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려고 하면 안 돼요. 외국의 비즈니스 방식은 한국에 완전히 맞아 떨어지지 않아요. 한국은 한국의 시장과 문화에 맞게 돌고 있기 때문에 좋은 비즈니스 방식을 원한다면 우리만의 방식이 있어야 하죠. 대학생 창업인들이 좌절을 겪는 건 온전히 개인적 실패라고 하기보다는 구조적인 부분이 덜 갖춰져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분업이 잘 되어 있는 나라들을 보면, 디자인 제품을 생산해 주는 곳도 있고 유통을 해주는 데도 있고 갤러리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기도 하죠. 이렇게 환경이 잘 되어 있다 보니 디자이너 스스로 자기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디자인 제품의 유통 과정 중간에 위치해야 하는 전문적인 사람이 많이 부족해요. 디자인 갤러리도 거의 존재하지 않고, 전시할 수 있는 곳은 많은데 판매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예를 들어 배추가 김치로 만들어져 팔리잖아요? 그 사업 과정은 배추를 키우는 농장, 배추를 가공해 줄 공장, 김치를 브랜드화하는 기업, 물건을 직접 팔 도소매인 등 체계적으로 구조가 짜여 있죠. 하지만 디자인은 만든 사람이 직접 팔기도 해야 해요. 배추를 키우고, 공장 가서 자르고 담고 브랜드화하고 소비자에게 홍보하고 팔고... 전 과정을 혼자서 해야 하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할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요.

결론은 외국의 방식을 적용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디자인 그 자체 다음이 무엇인지, 충분한 경험을 겪고 나서 창업을 해야 하죠. 가령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주제가 있다면, 자동차는 다섯 명만 디자인하고 나머지 95명은 다른 파트에서 효과적으로 일하는 거에요. 그래야 만들어지고 판매가 되죠. 한국 학생들은 다 디자인만 하려 해요. 그게 문제인 거죠. 디자이너는 디자인 전공 학생 중 10%만 해도 돼요. 정말 필요에 의해서, 환경에 대한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아 이런 디자인이 없구나. 이런 환경엔 이런 디자인이 필요한데.'라고 깨우친 사람이 하는 거죠. 나머지 90%는 마케팅 관련 비쥬얼을 만들어 주든지, 좋은 환경에서 판매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 돼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한 쪽으로 몰려 있어요. 현실적으로 제작 과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내 스타일대로 내 디자인을 하겠다.'라는 고집만 부리면 문제가 돼요.


Q. 전시 기획도 많이 하신 걸로 들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것과 디자인을 기획하는 것에 있어서 두 분야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나요?

A. 그전에는 '전시 기획'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고, 대중적으로 일반화 된 게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아요. 처음엔 사람들이 디자인 전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죠. '디자인 전시를 왜 해?'라는 의문이 많았고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엔 그런 카테고리 자체가 없었죠. 그 당시에 저는 '굳이 나까지 디자인을 해야 할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졌어요. 저도 물론 개인 디자이너의 꿈을 꾼 적이 있었죠. 하지만 많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한 발 뒤로 물러서 보았어요. 그래도 정말 디자인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 위해 전시를 만들어주고 어떤 디자인을 더 좋게 보여주는 데서 의미를 찾은 거죠. 앞서 말한 디자인 비즈니스 분업 역시 마찬가지예요. 어느 한쪽의 도움과 지원이 없다면 디자이너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어요.


Q. 아직 디자인 비즈니스 과목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는 저학년 학생들이 좀 더 일찍 비즈니스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회가 있을까요?

A. 사실 '비즈니스'라는 게 굉장히 광범위하잖아요. '디자인'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듯이. 매우 광범위한 분야이기 때문에 따로 카테고리를 나눠서 전문적으로 공부한다는 건 사실상 어렵고, 경험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든 인터넷 기사든 생산적인 활동에 대한 이야기든 뭐가 먼저인지는 상관없고, 많이 접해야 해요.


Q. 프리마켓에서 물건을 팔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A. 네, 그것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죠.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런 활동을 1인칭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림자처럼 한 발 뒤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지, 그저 흥미만 갖는지, 어떨 때 쓰레기로 평가하는지 하나씩 하나씩 배우는 거죠. 사실 그런 작은 경험들이 30대 되어서 큰 쓸모가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런 경험을 거친다고 인생이 크게 바뀐다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Q. 2학년 '디자인 프로세스' 수업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하고 또 많이 고민하는 부분인데, 디자인 비즈니스에 있어 철학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굉장히  큰 부분이죠. 사실 질문 자체가 단어를 규정짓는 데 조금 문제가 있어요. 비즈니스는 너무 비즈니스로 접근하면 안 되고 철학도 그 철학이 아니에요. 디자인이 뭔지 정의해보라 하면 저마다 다 다르죠? 철학도 그래요. 여기서 철학은 '아이덴티티'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럼 아이덴티티가 무엇일까요. 지금 내 상태, 내 스타일, 내 머리, 내 옷, 행동과 외모... 나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게 나라고 알고 있잖아요. 바로 그거에요.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지 계획할 수 있는 부분. 기능부터 비쥬얼까지 내 손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이덴티티가 되는 거죠.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은 사물을 창조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 디자인은 내 자식과도 같아요. 나를 보여줄 수가 있죠. 내가 주로 입는 스타일의 옷을 보면 사람들이 '네 스타일이다.'라고 하듯이. 아이덴티티라는 게 어떤 형태 하나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뭐라 명확히 정의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것이긴 하지만, 무엇을 모아서든 '내 것 같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내가 말 안 해도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Q. 마지막으로, 자신의 브랜드와 디자인 사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항상 조직력을 생각하세요. 디자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고 나서가 더 중요해요. 1에서 100까지 놓고 보면 만드는 건 20~30, 나머지가 그 만들어진 디자인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판매할지에 대한 것이에요. 물건이 소비자에게 가기까지는 거쳐야 할 과정이 아주 많아요. 디자인을 넘어서 그다음을 어떻게 펼칠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해요. 브랜드라는 게 내가 만들었다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인정해야 하잖아요? 내가 만든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지되게 하느냐가 제품의 디자인만큼 중요해요. 원래 생산보다 판매 활동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제품의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어요. 직접 사서 쓰는 사람은 더욱 많이 알 수 있죠. 학생들도 슈퍼마켓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이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내가 왜 이걸 사고 있는지 생각의 역행을 해 보세요. 비즈니스는 그렇게 공부하는 게 제일 빠른 것 같아요. 디자인을 배우는 많은 학생이 디자인 다음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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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아늑한 사무실에서 교수님이 하나씩 들려주신 주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둑어둑해져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인터뷰 내내 차분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여태껏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던 부분이 어느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어 이야기 전부가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단순히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넘어 조금 더 구체적인 꿈과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늦은 시간 저희의 방문을 마다치 않고 알차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구병준 교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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