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감동을 이야기하다 - 김은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6:47 조회3,31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새로운 교강사 비트박스에서 처음으로 모실 분은 ‘문학과 미술’,
‘현대미술론’, ‘미술이론과 비평’ 과목을
가르치고 계시는 김은지 교수님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신 뒤 석사과정을 밟으셨고, 미학교육,
문화이론에서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후
2007년에 베를린훔볼트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거치고, 한국에 돌아오셔서 3년째 교수직을 맡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운영팀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시간을 내어 주셨고,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저희는 교내 카페에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Q.
현재 다양한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계시고,
수업 내용도 풍부하기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으신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분야에
조예가 깊으신 건가요?
A. 베를린에 있을 때, 어떤 한 부분을 알기 위해서는 그전과
지금과의 연관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배웠어요.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예술을 큰 흐름으로
보고, 글이든 무엇이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술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연관성을 고민하다
보니, 많은 부분이 서로 엮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대학인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이런 것들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저도
학생들과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창작활동에 관한 의논도 하고, 또 다른 정보를 찾고 나누기도 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지 원래 많이 알았던 것이 아니랍니다. (웃음)
제 수업이 학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해요.
Q. 교수님께서 학생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공부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이과여서 수학, 물리, 생물 등등을 배웠어요.
제일 재미있게 했던 공부가 지구과학이었죠. 별의 세계와 우주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
말이에요. 우주의 커다란 생성과 소멸 속에서 지구가 있고,
그 속에 우리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지구과학이잖아요? 나를 알아가는 공부라고
생각했어요. 우주의 신비한 모습에 반했던 게 아닐까요,
어렸을 때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웃음)
아버지가 군대에 계실 때 장교가 독일인이었는데, 그때
정확하고 논리적인 게르만 민족에게서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도 독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죠. 그런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독문학을
공부하다가 독일로 갔어요. 어떤 나라를 가기 위해선 언어,
문학은 기본이고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독일은 근대철학의
근원지이자 표현주의의 발생지잖아요. 독일이 가지고 있는 문화∙역사적인 매력을 배우다 보니까 미술사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어요.
베를린예술대학에 합격하고 난 후 아버지께 미술사를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그게 무슨 공부냐, 그림을 그리는 것이냐 하셨어요. 그래서
그게 아니라 미술과 역사를 함께하는 공부다, 아트히스토리를 분석∙해석하고 시대를 알고, 현장답사와 자료수집을 하는 문화사적인
학문이라고 설명해 드렸어요. 법학을 공부하셨던 아버지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셨죠. 법은 책에 모든 게 있는데, 미술사는 책으로만 끝나는 공부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재미있게 공부하는 걸 보시더니 결국 이해해 주셨죠.
Q. 저희는
미대생이라 인문학적 소양과 거리가 먼 것 같아요. 특히 문학이 정말 접근하기가 어려운데, 미술과 문학은 어떻게 접목해야 가까워질 수 있나요?
A. 이미 질문 자체에 벽을 두고
있는데, 그걸 허물어야 해요. 미술과 문학은 예술이라는 큰
장르를 표현하는 매체가 다를 뿐이에요. 유디트와 살로메를 아시나요? 성경에 나오는 팜프파탈인데,
그들을 다룬 작품이 참 많아요. 성경 속 이야기가 문학이 되고, 미술이 되고, 이후 그것들은 상호작용하여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죠. 표현의 매체가 다르다는 것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영역,
역할의 분산인 것이지 예술이라는 안에서 경계가 나뉘는 것이 아니에요. 문학과 미술도
궁극적으로는 감동을 추구하는 분야에요. 그 과정에서 문학을 선택하든지,
미술을 선택하든지 방법의 차이인 것이죠.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라는 책이 있어요. 봄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는데, 젊음과 비교하며 봄을 표현하시면서
봄이 주는 싱그러움을 잘 그려내셨어요. 반면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는 그림으로 표현된 봄이에요.
제피로스, 비너스, 머큐리가 3, 4, 5월을 이야기하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죠. 두 작품 모두
봄이 가져오는 찬란함과 생성의 힘을 표현하고 있어요. 표현하는 매체가 다른 것뿐이지, 궁극적으로는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죠.
Q.
미대생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추천도서를 뽑으신다면?
A. 미대생은 창작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다면 꼭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보길 바래요.
지금까지 현대작품에도 등장하는 이야기들이고, 다양한 알레고리를 담고 있어요.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으면 현대작품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고
응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요. 이 책을 읽을 때는,
줄거리에 집중한다기보다 인물과 그 상징에 중점을 둔다면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우리나라 4 대 유교 책 중에 <중용> 역시 추천해요.
중용은 ‘늘 중간자의 위치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유지해나가는 의지적인 힘’이란 뜻인데, 작품이 안될 때 나를 지키는 힘도 얻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겠다는 가치관을 세울 수도 있어요.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어도 돼요. 줄거리가 있는 내용이 아니어서, 마음이 어렵거나 고민이 많을 때
좋은 구절 하나씩 읽으면서 힘을 얻기에 좋아요. 되려 소설이나 지식적인 책은 그럴 때 방해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 책은 늘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고,
자다 일어나서 펼칠 수도 있어요.
Q. 교수님은 평소에 어떤 교양 취미 생활을 즐기시나요?
A. 취미 생활을 좀 즐기고
싶네요. (웃음) 따로 있지는 않고, 운동을 잘하진 않지만 즐겨 해요. 어린 시절엔 수영도
배웠고, 특히 대학 시절 학교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봄이나 여름에 건조하면서 맑은 날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유럽은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어요. 다른 취미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림이나 조각을 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수다를 떨거나 술을 할 처지는 안되거든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편으로는
운동이 있고, 조금 더 여유가 생긴다면 조형창작을 하고 싶어요.
Q.
유학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외국
학생들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예술관에서의 차이점이나 그 밖의 갭 같은 것이 있다면 알고 싶어요.
A.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와 유럽은 기준과 역사가 다르고, 변화하고
발전해오는 과정이 달라서 예술관의 차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한국미술사보다 서양미술사를
열심히 하죠. 실기교육도 거의 서구에서 온 것들이고,
이론수업도 서구중심의 흐름으로 진행돼요. 사실 그들이 개척하는 입장이었다면 우리는
서구에서 들어온 것을 늘 수용하는 입장이었죠. 독일에서 공부할 때 학생들 보면 잘 그리지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작품 속에 무언가 얘기하려는 에너지가 넘쳐요.
그리고 내 작품이 왜 훌륭한지 이야기를 정말 잘하죠.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그
반대에요. 정말 예쁜데, 향기가 없는 꽃 같아요. 재주도 뛰어나고 솜씨도 훌륭해서 더 이야기 할 게 없는
건가? (웃음)
베를린예술대학은 이론을
전공해도, 커리큘럼상 실기과정을 거치게 해요. 그래야
비평도 할 수 있고 창작과정도 알 수 있고 작품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고요. 조각, 회화, 사진, 드로잉을
다 배워야 했어요. 회화 시간에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절 보시더니 ‘한국에서 왔니?’라고
물으셨죠. ‘한국 학생들은 연필 잡는 법이 딱 하나야.눕힐 수도 있고 세울 수도 있는 거지,항상 한 포즈로만 연필을 잡으면 뭘 그릴 수
있겠니.’하고 말씀하셨어요. 그쪽은 학생들이 조금 서툴러도
자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하면, 교수님들께서
‘그러면 그런 얘기는 이렇게 표현해 보는 게 낫지 않니’, ‘표현을 더 해보도록, 유일한 세계가 나올 수 있게’ 같은 조언을 해 주세요.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려왔느냐고 하지 않으시고, 뭘 의도했는지
물어보고 학생이 설명하면 경청해 주시죠. 그렇게 서로 존중하고 존중 받는 과정에서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교수님들은 학생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큰 관심을
가지시고, 학생들도 자기 작품에 대해 자신 있게 임해서 수업이 늘 살아 있어요.
만약에 한국에서도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는다면,
창작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나 색깔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은
교육의 정석이 아니라, 국가에서 요구하는 체계일 뿐이지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피아노도, 한국 학생들은 모든
기교가 다 되고 너무 훌륭한데 자신만의 필링이 없다고 해요. 드뷔시의 월광을 쳐봐라, 하면 잘 치는데, 나만의 월광을 표현해봐라, 하면 아무도 못 치는 거죠. 그런 식의 교육이 미술에서도
진행됐잖아요. 입시 때문에 ‘네 맘대로 그려봐라.’ 하면 재능 넘치는 학생들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죠.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떤 학생이든지 큰 재능과 잠재력이 있으니 많이 찾고, 보고, 감동하면서 내 나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나가서 경쟁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내
것은 이건데, 네 것 보자 할 수 있는 시대니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굉장한 작품이 나올 거에요. 여러분은 한국을 이끌어나가야 하잖아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Q. 교수님께서
작가가 되어서 작품 활동을 하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A. 이야기를 담는다는 건 개인적일
수도 있고 시대의식을 담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감상하는 이와 맞지 않으면 와 닿지 않잖아요. 이야기를 담는다기보다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이래서 예술이 있어야 하구나 싶을 만큼. 감동의 힘으로 개개인의 관점이 변화하고, 살아왔던 시대와 지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께도 멋지게 보이는 작품 역시 중요하지만, 감동의 역량을 키워보라고 하고
싶어요. 외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가슴 뭉클함을 함께할 수 있는 작품 말이에요. 서툴더라도, 내가 마련한 세계를 다른 사람이 보고 진한 감동이
있다면 근사해 보이지 않을까요? 감동이라는 큰 목표를 가져보아요.
교수님을 통해 문학과 미술, 그리고 감동에 관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금속조형디자인과 학우들을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은지 교수님께 다시 한 번 더 감사 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