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교강사비트박스

디자인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두서없는 생각 - 이재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6:44 조회2,006회 댓글0건

본문

저는 처음 홍대에 들어와서 조형과 디자인을 접하는 신입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항상 디자인과 작업의 기본 과정에 대해서 강조를 하게 됩니다. 사실 제 수업은 어떤 대단한 기술을 배운다기 보다는(물론 1학년 때 배우는 기본적인 금속기법들은 대단한 것들이긴 합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기록하고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몸에 익히도록 강조하는 부분이 아주 큽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과정을 지키라며 강조하고 잔소리를 하는 걸까요?

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부여받으면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먼저 디자인이라는 게 뭘까요? 'Design'은 외래어이지만 버스나 텔레비전처럼 우리 주위에 공기처럼 쓰는 말이기도 하죠. 라디오를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고 있듯이 디자인도 어떤 것인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친근하게 느끼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의 원래 뜻이 무엇인가요? 사전을 찾아보면 도안하다, 설계하다, 계획하다… 등등의 번역들이 떠오릅니다. 어떤 사전에서는 'design=디자인하다.'라고 검색되는 사전도 있더군요.

우리가 어떤 멋있는 물건을 보았을 때 "이건 디자인이 좋네!"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사실 디자인이라는 건 어떤 외형적인 형태라든가 산업적인 측면에서 어떤 제품의 모양이 좋다는 걸 디자인이 좋다고 하진 않는다고 했죠.

위에서 언급했듯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굳이 번역하면 디자인하는 과정, 프로세스를 개괄적으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설계'란 말로 디자인이 번역되는 것이죠. 그 말은, 예를 들어 제품디자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제품의 디자인 속의 기능성이라든지, 심미성, 생산성 등의 문제를 조정하고 부위별 디자인을 통합해서 제품의 전체적인 모습을 설계한다… 뭐 그런 의미가 있겠죠. 다시 말해 기획하는, 매니지먼트하는 과정 전체를 디자인이라고 일컫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본래 디자인의 의미에 소홀하다 보면 기획하는 업무를 기피하게 되고 단지 스타일에만 치중하게 되겠죠. 이런 일들이 누적돼서 결국은 디자인은 곧 그 모양에만 주안점을 둔 스타일리즘이라는 오해가 생겨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디자인함에 있어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컨셉을 설정하는 데 있을 겁니다. 특히 작가의 심오한 생각을 반영하는 순수미술의 성격을 한 부분 가지고 있기도 한 공예에서 컨셉의 중요성은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컨셉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디자이너가 밑바탕에 깔고 있는 철학이죠. 외국에서는 실제로 컨셉이란 말 대신 필로소피(철학 philosophy)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요. 필로소피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묵직한 무게감을 주죠. 그만큼 디자이너가 가진 디자인 컨셉은 그 디자인의 빛과 같은 요소일 거예요. 디자인함에 있어서 목적과 개념을 정리해서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게 디자인 컨셉이죠. 처음에 디자인을 시작할 때 작품을(또는 제품을) 감상하는 사람이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에 대한 분석. 그 분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 시대의 디자인 경향이라던가, 구매자의 여론조사 등등… 상업디자인은 경쟁업체와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겠죠. 그런 분석을 거친 후에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 결론이 컨셉이죠. 그 결론을 통해 여러 가지 분야별 컨셉이 나오죠. 예를 들면 제품의 디자인이라던가, TV 또는 지면 광고, 또 우리의 경우엔 전시장의 컨셉도 포함이 될 겁니다. 그 여러 컨셉들은 최초의 컨셉과 동떨어지지 않은 통일된 컨셉을 지향해야 하고요. 예를 들어 어떤 가수가 앨범을 낸다. 그리고 그 앨범의 컨셉을 뭔가… 종교적인 색채라던가 그 종교에 반하는 컨셉을 가지고 제작한다면 그 앨범에 실려 있는 노래들이 그 컨셉이 맞추어져 있는 컨셉 앨범일 것이고, 그 노래들의 뮤직비디오에도 그런 종교적인 색채가 농후해지겠죠. 십자가가 등장한다든가, 십자가를 불태운다든가,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든가… 과한 경우는 그 종교를 모독하는 것도 자기 컨셉을 구축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현대의 사회문제에 대해 고발하는 컨셉이라면 또 그러한 컨셉으로 비디오가 제작되겠죠.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 가령 전쟁이라던가 어떤 이념에 대립, 종교적인 대립, 차별, 범죄, 낙태, 기아문제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또 그 앨범의 프로젝트에 따른 콘서트를 개최한다 하면 그 무대 디자인과 조명도 그 통일된 컨셉 안에서 디자인되고 제작될 겁니다. 애플의 디자인을 보면 일단 그쪽 디자인의 모토는 무조건 간결하겠죠. 높은 사양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생산하지만 가급적 필요없는 버튼은 줄이고 군더더기를 없애고 최대한 간결하게. 근데 애플의 광고를 보면 그 컨셉에서 벗어나지 않죠. 구구절절 제품의 기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간결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배경도 아주 단순하게 하얀색으로 또는 간접적인 비유를 사용한다든가 하죠.

컨셉의 중요성은 처음에 컨셉을 잘못 설정하게 되면 큰 낭패를 보게 돼요. 만약 실패하게 되면 제품이나 패키지, 광고,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됩니다. 광고함에 있어서 10대나 20대를 겨냥한 제품인데 광고에 50대 60대 아줌마 아저씨들을 등장시켜서 이 물건 써봤는데 완전 좋아요…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술 광고를 하는데 컨셉을 잡는다 치면 남자… 취한다… 기분 좋다… 회식… 뭐 이런 것들이 연상되는데 이것 중에 '기분 좋다'를 타겟을 삼아 컨셉을 잡으면 대충 스토리를 만들어야겠죠? “회식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기분 좋게 건배하며 술을 마신다.”를 처음 컨셉으로 잡아 아이디어 토론을 하고 전개를 하죠. 그 처음 시작에서 술 광고에 틴에이져들이 등장한다거나 가족적인 분위기로 이끌어나간다거나… 이런 건 곤란하죠. 그리고 그런 과정… 앞서 말한 취한다든가 기분이 좋다던가 남자들에 술자리에서의 회포를 풀고 그런 것들을 나열하는 거. 그게 소비자의 심리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위한 작업이죠. 그래서 디자인 컨셉이 정해지면 심리학적인 면을 고려해서 그걸 시각언어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금속제품을 디자인하고 주얼리를 제작하면서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시각언어라는 건 색과 형태로 이루어진 겁니다. 우리 눈에 보이려면 선과 색이 있어야 하겠죠. 근데 디자인 컨셉이 바로 시각언어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그런 심리학적인 연구와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시각언어로 만들어지는 거죠.

이렇듯 디자인에서 컨셉을 빠트리거나 소홀히 하게 되면 그다음 과정은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과정이 중요한 것이겠죠.

우리가 하는 작업은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특히 우리의 작업은 물리적인 과정이 많이 포함됩니다. 그 과정을 정확히 숙지하기 위해서 배우고 익숙해지기 위한 '준비과정'은 더 멀고 험난하지요. 하지만 어떤 작업이든 한 과정이 빠지게 되면 그다음 과정에서 무언가가 어그러지게 된다는 건 여러분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사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너무 기본적이고 여러분도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자꾸 잊게 되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보다 조금 더 경험이 많은 저도 때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그런 과정을 쉽게 생각하고 컨셉을 잃어버린 비싼 쓰레기를 만들곤 하니까요. 우리가 전공에 재미를 느낄수록, 경험이 쌓여갈수록 생각해보고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