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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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ontecou -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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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6:30 조회1,8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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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ontecou
 

저마다 최신 디자인을 외치고 트랜드를 쫓아가는 가운데, 현존하는 이중 무려 30여년간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하여 자신만의 worldscape을 구축한 아티스트가 있다.

나는 이번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이고 너무나 매력적인 작업을 창조하는 Lee Bontecou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 그녀의 이름(성)을 한글로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도 없지만 대략 봉테쿠라고 읽으면 될듯 하다.
 
1931년 미국 프로비던스(Providence, Rhode Island)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조형가인 봉테쿠는 6~70년에 미국 비평가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지만 1972년 갑자기 화단에서 사라지면서 한동안 완전히 잊혀진 작가였다. 그녀의 6~70년대 작품은 당시에 그 참신성이나 혁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때문에 그 무렵 출간되었던 책자들 에서는 많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봉테쿠에 대한 비평은 소수의 비평가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체계적이지 않고 미미한 편이다. 봉테쿠는 그로데스크한 미학적 감각을 자극하는 추상을 전개하는 작가로서 1960년대에는 한 유명 비평가에 의해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작품과 함께 ‘정신병자의 작품’으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야요이 쿠사마는 실제로 정신병원에서 생활 중.) 이는 당시 남성만이 활동하는 뉴욕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작가들에 대한 멸시의 표현으로서 그 만큼 봉테큐의 작품이 혁신적이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봉테쿠의 작품의 거의 제목을 붙이지 않아 ‘Untitled’로 남아있는데, 평면과 입체, 조각과 회화, 재현과 추상이 기묘하게 혼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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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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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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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6
 
 
 

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봉테쿠의 주목받던 작업은 전쟁과 폭력의 공격성, 적대감 등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봉테쿠는 1960년대 전 세계가 냉전의 시대로 치닫기 시작한 당시의 국제적인 분위기와 전쟁, 핵폭발 등에 대한 개인적인 공포를 블랙홀과 같은 형태의 모티브와 갖가지 재활용 재료를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녀가 표현하는 블랙홀 형태의 부조형식의 작품들은 평면의 수많은 스케치, 회화작업에서 비롯되는데, 그녀의 작품에서의 전쟁의 이미지는 위험하고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이러니하고 유머러스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구멍이 입이나 여성의 성기에 비유되어 성적인 메시지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그녀가 이러한 조각적 회화작품(또는 회화적 조각작품)을 발표하자 마자 소장가들은 물론 비평가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특히 기술적으로 당시에는 여성이 그 시대의 최첨단의 기술이었던 용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거대한 구조물과 같은 회화작업을 만든다는 것은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최신 기술인 철의 용접이 갖고있던 창조적이고 미래적인 이미지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철이 산화되는 현상을 어두움, 죽음 등의 이미지로 변질시키고 퇴색된 캔버스, 군용용품들을 콜라쥬함으로서 전쟁과 폭력의 위협적인 어두운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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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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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69
 
 
 

그 이후 큰 딸을 출산하면서 작품의 색채가 전반적으로 밝아지고 누에고치나 물고기, 꽃과 같은자연의 생물을 모티브에 관심을 갖는데, 재료도 철강과 같은 무거운 재료를 벗어나 가볍고 유동적인 느낌을 플라스틱, 에폭시 수지를 사용하여 섬세하면서도 공예적이며 생체 유기적인 세계를 보여주게 되는데 이는 정치적인 환경 친화론자로서의 그녀의 소신을 말해준다. 하지만 비평가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던 전쟁시리즈와 달리 이러한 꽃 이미지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가들의 평은 봉테쿠가 미술계와 담을 쌓게 되는 계기가 된다.

원래 봉테쿠는 기존의 조류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기조가 강했고 1972년 뉴욕의 미술계를 떠나 펜실베니아의 자연속에 작업실을 차리고 30여년간 잠적하게 되는데 그 기간동안 봉테쿠는 뉴욕의 화단과는 전혀 접쵹하지 않으며 작업에만 열중하면서 섬세한 은하계의 별이나 우주공간을 연상시키는 모빌 연작을 제작하게 되는데, 중앙의 핵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철사로 연결된 선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할 만한 야릇한 정체불명의 오브제이거나 은하계 또는 세포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갤러리의 천장에서 뻗어 내려오는 추상의 유기적인 몸체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걸린듯한 이 조각품들은 수많은 드로잉와 같은 습작을 통해 유출된,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군집형상을 하고있다.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2003~4년의 뉴욕과 시카고에서의 회고전에서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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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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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98
 
       

봉테쿠의 작품에서는 현대미술이 개념과 아이디어로 부각되면서 사라지고 있는 정교함, 공예에서 느껴지는 섬세함, 그리고 회화적 조각작품이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는 조형성이 확인된다.(회화의 한계를 조각의 영역으로 변화시키려는 작업으로 평가되겠다.) 항상 혁신적인 작업에 매진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에는 물론, 잠적해 있던 기간에도 그녀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봉테쿠는 현재 70대의 할머니이지만 여전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자료가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뉴스- 올해 초에 뉴욕에서 새로운 작업으로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 몇년 전 이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 작품의 경이로운 조형감에 빠져버린 것은 물론, 한창 활동할 시기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몇 십년 동안 시골에 숨어 지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작가로서 어떤 길을 가야할지 그리고 작업의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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