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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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공작조형의 문화적 상보성(相報性) - 유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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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5:33 조회1,5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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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한다. 금속이나 목재는 손을 거쳐야 완전한 기물이 된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공구가 없다면 노국의 공수반이나 황제 때의 추와 같은 명공도 어찌 그 멋진 솜씨를 펼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병기나 금속 악기라 할지라도 집게와 망치로 단조하지 않으면 이들을 만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기물도 세찬 노의 불을 거치면서 크기나 모양이 각각 달라진다.” <천공개물(天工開物)> 송응성

  수천 년 전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 궁전 건축이 끝나고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불러 베푼 연회에서 지혜의 왕 솔로몬이 물었다.  “이토록 훌륭한 궁전을 세우는데 가장 큰 공로를 한 이가 누구인고?” 벽돌공들이 말했다.  “돌을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 이토록 아름다운 벽과 천장과 아치를 튼튼하게 만들었으니 우리가 제일 큰 공로를 하였습니다.” 목수가 말했다.  “그렇지만 그 벽돌 천장과 바닥에 아름다운 목재로 마감한 우리들이 진짜 창조자라 생각합니다.” 기초 바닥공사를 하였던 이들이 나서며 말했다.  “만일 우리가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지 않았다면 이 거대한 건축물은 어떻게 세울 수 있었을까요?  비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날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렇게 작업할 수 있도록 연장을 만든 이는 누구냐?”, 모두들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물론 대장장이죠......”

  두발로 걷고 불을 사용하며 지상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인간은 철(鐵)을 다루게 되면서 또 한 번의 획기적 변화를 겪게 되었고 아직까지 이에 필적할 또 다른 소재를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지금 철기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톰센(C. J. Thomsen)의 문명발달 3시기 법을 보더라도, 또 기술사적 관점에서 인류문화 발전단계를 가늠해보면 고대 문명으로부터 청동기를 사용한 시기를 거쳐 철을 사용한 시기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 예이다.  더러는 청동기 문명을 건너뛰고 철기문명을 맞이한 예도 있으나 왜 청동기(靑銅器)문명이 철기문명에 앞서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할 때 역시 불과의 관계를 들 수밖에 없다. 금속은 사철, 사금과 같이 천연에서 채취하든 광석을 부수고 환원시켜 얻어내든 불로서 녹이는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는데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을 녹일만한 화로와 발전된 송풍시설 및 화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함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가공온도(즉, 낮은 온도에서 얻어지는)를 갖고 있는 청동기가 먼저 사용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청동기의 원료인 구리(Cu)는 융점이 1083°C 이지만 주석이나  아연 등이 합금되면 융점이 훨씬 낮아지게 되는데 채굴하여 얻은 동 광석은 주로 황동광석(CuS)으로서 이를 녹여 환원시키는 온도는 1000°C 이하가 된다. 즉 융점이 1539°C인 철(Fe)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얻어질 수 있었기에 고대의 장인들은 일차적으로 천연상태에서 그리고 채굴된 동으로부터 청동기 문명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후 인간이 철을 발견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그 하나는 채광 착오설이고 또 하나는 산불설이다. 채광 착오설은 청동기 시대에 이미 높은 수준의 야금기술을 갖고 있던 장인들이 동의 원료인 황동광석을 채취하던 중 광석상태에서 그와 색이 비슷한 적철광석(FeO) 함께 채취하여 노(盧)에 넣고 1000°C 부근에서 동을 얻어낸 후 철광석이 환원되어 슬래그(Slag)화되어 노에 남아 있는 붉은 찌꺼기를 제거하던 중 이를 두드려본 장인이 전성(展性-얇게 퍼지는 성질)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산불설로서 그 시대 인간이 생활에 사용하던 열이 그 온도가 800°C 이하인 산화상태이나 대규모의 산불이 발생하여 지표에 드러나 있는 철 성분이 많은 노두 철광석(FeO, FeO)이 1000°C이상의 지속적인 고열에 녹게 된다.  여기에 나무들이 추가로 타면서 숯들에서 발생한 환원가스와 새로이 발생된 열과 함께 하여 환원(還元)되며 철 덩어리로 굳어진 것을 산불 뒤 장인들이 채취하여 두드려봄으로서 철의 가단성(可鍛性-충격에 견디는 질긴 성질)을 알게 되어 철기를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인류가 맨 먼저 사용했던 철은 운철(隕鐵)이다.  철을 90%정도 함유한 수많은 운석들이 매년 지표면에 떨어진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무거운 철운석 중 하나는 “호바”라는 운석인데 고대시대 오늘날 아프리카의 ‘오바 웨스트’라는 곳에 떨어진 것으로 무게가 60톤에 달한다.  운철은 철과 니켈(Ni)의 합금으로서 하늘에서 내려준 금속으로 이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운철 제품은 B.C 14세기 것으로 이집트 나일 강 유역에서 출토된 철주(鐵珠-Ni 7.5%)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출토된 철도(鐵刀- Ni 10.9%)이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B.C 14세기(은대 중기)의 유물에서 청동기의 날에 운철을 붙여서 사용한 제품이 출토되고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하늘로부터 그냥 주어진 것”이지 생산된 것이 아님으로 여기서 논하는 철기문명에 들 수 없다. 

   이로부터의 철 작업은 불을 바탕으로 사람과 철과 도구 및 설비의 상관관계 가운데 이루어지는 인간의 거친 듯, 한편 리듬을 필요로 하는 부드러운 공작행위이다.  여기에 더러는 얼마만큼의 즉흥성이 함유됨으로써 놀이적 성격을 갖기도 하며, 시각적 의미와 함께 촉각적 느낌을 가지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형적 혹은 실용적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시촉각적 이미지로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을 만들어내는, 어쩌면 전근대적이고 비생산적, 비효율적인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는 뒷마당으로 밀려난 삶의 양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컴퓨터에 입력되는 무한한 정보들보다 재료를 직접 자르고, 뚫고, 두드리고, 불질하며 매만져지는 가운데 입력되는 그보다 많은 무엇인가 있다고 보여 지기에 이 시대의 예술세계에서도 꾸준히 존속한다.  과거에 만들어진 어떤 것들은 과학적 탐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21세기 정보화 사회 관점으로 보면 작업에 있어 불리고 두르려지는 하나하나의 흔적은 내 몸으로부터 철로 옮겨가는 정보들이고,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 만들어진 형상들은 그런 정보의 결집체라 하면 어떨까?

    철 공작조형은 원래 동 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쓰임의 시작이며 근간이다.  또한 근대 이후 물리적 쓰임이 배제된 그 어떤 철 조각에 있어서도 그  공작성이 유지될 때 문화적 존재의의를 갖는다.  그렇다.  이 시대에 기왕 철 작업을 할 거라면 조각이든 실용적 공예든 좀 더 폭넓게 쓰임의 해석에 구애를 받지 말아야겠다.  단, 이미 지난 20세기에 다 보여준 차가운 조형예술의 세계는 어서 빨리 잊어야한다. 한편으로 이 시대에 조형예술이란 분야를 재편한다면 넓게 보아 하드웨어적 성향을 갖는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한 요건이 되리라 본다. 이시대의 철 작업은 소프트웨어적 문화시대에 문화적 상보성(相報性)을 갖추기 위한 하드웨어 공작조형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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