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교강사비트박스

제너럴리스트가 되어라 - 오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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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10:44 조회2,5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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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강사 비트박스에서 모시게 될 분은 1학년 기초입체 수업을 담당하고 계시는 조소과 오상일 교수님입니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신 오상일 교수님은 현재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며,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대안공간으로서 아트스페이스 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기꺼이 시간을 내주신 덕분에 우리 운영팀은 교수님의 작업실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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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나는 너희 선배라고 할 수 있지. 조소과지만. 조소과에 72년도에 들어왔어. 너희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그때 홍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다방 딱 두 개 있고. 지금 홍대 앞이 이렇게 변화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그 당시에 땅 샀으면 정말 괜찮았을 텐데(하하). 건물도 전부 세 개밖에 없었어. 지금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스탠드 지붕 있지? 그쯤에 드럼통 반 쪼갠 것 같은 건물이 공예관이었어.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는 유학을 갔다 왔어. 대학생부터 따지면 거의 평생을 여기서 보내다시피 했어. 항상 좋은 작가가 되고 싶지, 교수가 최종 목표인 건 아니고. 더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 교수가 되면 조금은 편한 점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에서 교수를 하게 되었어. 물론 작가적 기질이 더 강한 사람, 교육자적 기질이 강한 사람 그런 건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예술활동이기 때문에 교수가 되려면 좋은 작가가 먼저 되어야 해.
 
 
Q. 저희 학과는 특성상 금속을 주재료로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와 달리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조소과의 입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재나 가공방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나는 구상작가야. 구상이 뭔지 알지? 조각에서 구상은 대체로 사람을 모델로 하는 작업이야. 서양의 경우, 서양 조각의 역사는 인체 조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90퍼센트 이상이 인체를 모티브로 만들었으니까. 구상조각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검증받은, 역사적 검증을 충분히 거쳤다는 그러한 얘긴데,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이 안 좋은 점도 있어. 왜냐면 너무나, 수없이 많은 작가가 이미 많은 것을 이룩해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봤자 그걸 뛰어넘기가 힘들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개척하는 것은 불리한 점이 있지. 장단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
조각들 대부분이 대리석 아니면 청동, 브론즈야. 나는 브론즈 작업을 해. 점토로 형상을 만들고, 석고나 폴리에스터를 뜬 다음에 브론즈로 다시 뜨는 거야. 점토 작업 해야 하지, 석고 작업도 해야 하지, 왁싱도 하고, 청동 같은 경우는 네 번의 과정을 거쳐야 브론즈로 완성돼. 시간도 많이 들고, 비용도 많이 들고, 노동을 많이 해야 해. 조소가 옛날에는 대부분 청동 아니면 대리석, 혹은 나무가 재료의 거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어. 지금은 현대문명이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재료가 조각에 쓰이게 되었지.
가장 마음에 드는 소재는 이제까진 브론즈였는데 브론즈가 비싸. 무겁고. 아무리 브론즈가 속이 비어도 무겁잖아. 브론즈는 재료 자체가 상당히 권위적이야. 동상을 만든다든가, 그런 거 있지? 그런데 밝고 가벼운 재료가 요새 사람들, 현대미술의 재료로는 많이 사용되지. 밝고, 화사하고, 귀엽고, 그런 재료들을 많이 사용해. 내용도 마찬가지야. 요새 걸그룹들 하는 거 보면, 내가 노래들은 잘 모르지만, 어쩌다 라디오에서 얼핏 들을 때 가슴 아픈 내용을 얘기하는데도 댄스음악으로 풀더라고. 터치가 가벼운 거야. 그런 게 요새 트렌드인거 같아. 미술도 그런 커다란 분위기 속에서 예외가 아니겠지?
 
 
Q. 조소가 평면적인 예술과 달리 입체를 다룬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특별히 더 요구하는 능력이나 신경 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조소과로서의 능력보다 미대 전체에 요구하는 능력이지. 옛날에는 나는 조각가입니다, 서양화가입니다, 판화가입니다, 이런 게 굉장히 자유로웠어. 전문직에 있다는 것도 상당히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의사,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도 전문가, 그러니까 스페셜리스트잖아. 그런데 요새는 그런 게 아닌 거 같아. 스페셜리스트의 마음가짐으로는 리더가 될 수 없어. 대학생이 되고, 공부해서 잘 먹고 잘살고, 내가 유명해지는 개인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서 대학생이 되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야. 사실 너희는 이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해. 무슨 꼰대 같은 소리를 하나 생각할 거야(하하). 내가 얼마 전에 미국 하버드 대학을 갔다 왔는데, 학생회관이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었어. 1층에 큰 식당이 있는데,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를 여기서 찍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식당 안에 대리석 조각이 있었어. 그 사람들이 전부 세계대전 때 죽은 사람들이야. 그런데 단순히 전쟁에서 죽었다는 것보다, 사회에 헌신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죽은 사람들이 쭉 있는 거야. 하버드에서는 학교 입학사정관이 대학교수들보다는 졸업생이 자발적으로 지원한 경우가 많아. 좋은 사람 뽑고 싶다고. 리더로서의 소양이나 남을 위해 헌신하는 소양이 없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하버드를 갈 수 없어. 그걸 보고 느꼈어. 정말 리더를 만들기 위해 뽑는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서울대 나와서 판검사하고 그러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겠다 이런 게 아니잖아.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이 어떠한가, 상당히 반성을 많이 했어. MIT에 가보고도 깜짝 놀랐어. 공과대라고 해서 학생들이 공돌이가 아니야. 그 수준이 대단해. 공돌이들이 우리보다 미술을 더 많이 알아.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미술 하는 사람들은 너무 미술밖에 몰라. 너희가 앞으로 많은 사회인을 만나보면 알겠지만, 내가 아는 심리학과 출신, 생물학과 출신들이 내가 가르치는 미술대학 대학원생들보다 예술적인 지식에 대해서 훨씬 알고 있는 게 많아.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교양으로 알고 있는 거야. 반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미대 학생 중에서 가장 무식한 게 조소과하고 공예과야. 서양화과나 디자인과 애들은 조금 나아. 내가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데 다들 싫어해. 그런데 그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무식하게 만든. 게다가 우리도 그 학과 출신이고. 그래서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네럴리스트로서의 시각과 꿈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리더가 되어야 해. 우리나라의 제일 들어오기 힘든 홍익대학에 들어온 너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리더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너럴리스트의 자질을 가져야 해.
내가 처음 얘기했듯이 우리 세대는 조각가입니다, 판화가입니다, 혹은 동양화에서 채색전문이다, 수묵전문이다 이런 것처럼 스페셜리스트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시대에 살았는데, 그건 모더니즘의 결과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만 추구한 결과지. 그런데 지금은 포스트 모더니즘이잖아.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어울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제너럴리스트가 궁해진다는 거지. ‘나는 조각가입니다보다 나는 아티스트입니다가 더 어울려. 장르를 나눈 것부터가 구시대적이라는 거야. 홍대도 판화과니 조소과니 나누지 말고, 그게 아마도 시기적절한 것일 수 있어. 유럽의 많은 학교가 학생을 뽑을 때 순수미술로 뽑지 조각이니 그런 거로 나누지 않잖아.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 모든 것을 다 뛰어넘는 보편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는 것이 좋을 거야. 금속디자인이라는 것은 내 분야가 아니야 하고 홀대하면 바람직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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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소라는 좁은 범위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셨는데, 교수님께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에 대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A. 인상 깊었던 건 많지. 뭐가 더 인상 깊었다고 말하기는 좀 그러네(하하). 이렇게 물어보면 또 생각이 잘 안 나. 어쨌든 간에 나에게 인상 깊었고 좋은 경험을 준 작업은 뭐냐 하면, 솔직하고 깊이 있었던 작품들이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자기의 삶이, 자기의 경험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 그것이 홀라당 그대로 나오면 그게 자서전이나 고백록에 불과하겠지. 그런데 조형이라는 건 형식 안에서 잘 버무려져서 나와야 감동이 있어. 금속이냐 나무냐, 드로잉이냐 페인팅이냐 뭐 그런 거 있지? 질감이 어떻고 색깔이 어떤가, 또는 크기가 어떠한가. 그 형식적 완성도 형식적 아름다움이 있어야 담긴 내용도 좋고, 그것이 형식적으로 완성이 안 되면 우리에게 전혀 감동을 못 주는 거야. 훈련을 많이 하고 작업을 계속하면서 쌓아야 해.
 
 
Q. 창작 영감을 받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주목하고 있는 작가나 선호하는 예술 장르 혹은 사조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A. 에디슨이 그랬잖아.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재능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에디슨에 의하면 영감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내가 젊었을 때 호주머니에 끼우고 다닌 작은 책이 있는데, 로댕 어록이었어. 로댕이 말한 걸 제자들이나 동료 비평가들이 기록한 거야. 로댕의 어록에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주는 유언이 있었어. 로댕이 이걸 분명히 얘기해. ‘영감 따위는 있지도 않습니다. 성실한 노동자처럼 일하시오. 끊임없이 만들고 관찰하고 또 만들고 하다 보면 당신 작업을 이해하는 신도가 있을 겁니다.’ 참 좋은 책인데 지금은 절판되어서 안 나와. 로댕의 말이 참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작품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면, 그 영감을 향한 길은 쭉 열려있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저절로. 길 가다 본 강아지나, 친구랑 같이 본 영화의 한 장면이나, 책에서 읽은 한 대목이나, 또는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정치적 이슈나,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영감을 줄 수 있어. 그러한 마음의 자세가 없고, 내 삶의 중심에 작업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영감을 받을 수 없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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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배 작가로서, 혹은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선배가 하는 얘기가 뻔하지 뭐. 너희가 배우는 건 디자인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약간 성격이 달라. 디자이너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희가 조소과나 회화과 사람들이었다면, ‘가난하게 살 것을 각오하고 살아라. 평생, 네 작업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고 평생 외롭고 평생 가난할 수 있다. 그게 아마도 정말 작가로서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할 거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거지. 누구나 빨리 성공하고 빨리 풀리고 싶지. 안 그렇겠어? 그래도 절망에서 포기하지 않고. 작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덕목이 그거야. 기다림. 작품의 깊이가 우리나라처럼 얕은 곳이 없어. 미술에는 하나의 사조가 있잖아? 다 거기로 따라가. 이거 괜찮다고. 자기 철학이 없으니까, 정말 자기 성찰에 의해서 작업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보이면 유행처럼 따라가는 거야. 개념적인 작품이 유행하니까 다 개념 찾아서, 개념 만들어서, 컨셉 잡아놓은 다음에 거기에 맞춰서 작업해. 디자이너랑은 달라.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에 맞춰서 하지만 파인아트는 아니거든. 뭐라고 형성되는 게 있어서 만들고 나면 여기에 개념을 붙이지. 디자이너가 컨셉 잡아놓고 디자인하는 거랑 파인아트는 달라. 아무튼, 순수예술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풍부한 교양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
칼 라거펠트라고 알지? 이 사람이 네 가지 브랜드에서 디자인을 해. 샤넬 수석디자이너하고, 펜디 같은. 그런데 이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고생을 엄청나게 해. 최소한 일 년에 두 번 봄, 가을에 수십 벌의 옷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야. 끊임없이 새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더라고. 그런데 라거펠트는 네 가지 브랜드를 하는 거야. 저게 인간이냐. 끊임없는 창작을 하는 거지. 그게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독서에서 나온대. 그 사람 개인 서재가 엄청나게 큰데 거기 있는 책이 전부 직접 본 책들이야.
미술 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멋진 작업이 나오기 힘들겠지. 너희도 멋진 디자이너가 되는 거지만 폭넓은 지식, 교양이 있어야 해. 그래야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거야. 모든 건 인간과 관련된 일이잖아. 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어떻게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겠어.
 
 
조소과의 입장에서 말씀해주실 거란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교수님의 철학 뿐 아니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을 향한 교수님의 진심어린 애정과 충고가 느껴졌습니다. 금속조형디자인과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가져야 하는 소양과 마음가짐에 대해서 돌이켜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홍익대학교 후배들을 위해 흔쾌히 시간을 내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오상일 교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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