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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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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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3 22:32 조회9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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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하다고 하죠. 
그래서 형식을 따지는 것을 고지식하다거나,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형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이 글에서는 그 걸 뉘앙스라는 말로 바꿔 부르고 싶습니다. 

 

뉘앙스? 
뉘앙스nuance. 색조, 명암, 형태, 정취 등에 대한 표현상의 서로 다른 미세한 특색.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글인데도, 하나는 읽기 좋고 다른 하난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면 
그 건 아마 뉘앙스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내용이 흔하더라도,
식상하지 않고 문맥에 꼭 맞는 단어(발음하기도 좋은 쫄깃한 단어!)와
리듬감 있고 가독성이 좋은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리고 필자가, 글의 내용과 심미성과 독자를 고려해서 글씨체에도 신경을 썼다면 
그 글엔 분명 어떤 매력이 있을 거예요. 그런 매력이 뉘앙스의 힘 아닐까요? 

 

또 다른 경우로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필자의 주변인 중에 옷 입는 것의 중요함을 무시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의 말은 이겁니다. 사람만 진국이면 되지 왜 겉모습으로 판단하려 하느냐. 
그런 겉멋을 따지는 사람은 허세를 부리는 거다.

 

그런데, 정말 알맹이만 좋으면 되는 걸까? 

 

저는 화장품 브랜드하면 겔랑이 생각납니다. 
그 브랜드의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 인터뷰에서 읽은 겔랑의 철학이 인상 깊어서인데, 그 글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올리비에 에쇼 드 메종은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 시킨다”고 했습니다. 
화장품 케이스 디자인으로 시각을, 향기로는 후각을, 립스틱 같은 경우 먹었을 때 맛도 나쁘지 않게, 발리는 느낌으로는 촉각, 그리고 케이스가 찰칵 닫히는 소리까지 디자인을 해 청각을 만족시키는, 그런 제품을 추구한다는 부연 설명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 세심한 배려. 일단 호감이 가지요? 
물론 화장품은 내용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점점 팍팍해지는 세상 속에서 만나는 그런 작은 감동은, 감성적으로 와 닿아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나요? 

 

아무런 뉘앙스도 가지지 않은 ‘쌩짜’는 너무 멋이 없습니다. 

 

멋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게 아닙니다. 
화려하게 멋을 내고 포장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뉘앙스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가식적인 허세가 아니라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멋입니다. 담백하면 담백한 대로, 예민하면 예민한 대로 그만의 뉘앙스를 지닌 것입니다. 
문제는 전혀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죠. 

사실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이런저런 것들(문학, 영화, 미술, 음악 등등) 자체가 뉘앙스의 미학 아닐까요?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말하는, 다양한 뉘앙스의 변주곡이 아닐까요?
행동의 주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어떤 뉘앙스를 지녔는가 하는 문제는 좀 더 깊이 고찰해보아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말이든, 글이든, 무엇이 되었든, 어떤 행위를 하는 주체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것은 그런 예민한 차이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형식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뉘앙스도 있지요. 말투, 표정, 제스쳐.. 이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와 표현이 크게 보면 뉘앙스라고 생각해요. 
마음이 알맹이라면, 그 걸 표현하는 건 형식이겠죠? 표현을 하느냐 안 하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덧붙여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생각을 같이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뉘앙스에 치중하다 보면, 정작 내용을 놓치기 쉽죠. 
알맹이가 없는 그릇은 허세가 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은 내용은 삶을 참 식상하게 만들지요. 

 

나는 어떤 뉘앙스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가? 한 번 생각을 해봅시다. 

 

내용은, 우리가 이미 아는 만큼 중요합니다. 
그리고 형식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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