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타당한 아름다움 - 완성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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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21:33 조회2,3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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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저의 작업을 훑어보면서 제가 작품의 완성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배우게 되었는지 찬찬히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2006년, 대학교 4학년. 졸전을 앞두고 최선을 다해 작업을 했습니다.
졸업전시때는 다들 수고했다 잘했다 멋지다는 말을 해줘서 그 분위기에 취해 정말 그런줄 알았습니다ㅎㅎ
근데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찔리는 무언가가 찝찝했습니다.
하지만 딱히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고 그냥 다시 작업을 계속 했습니다.
1년쯤 지나서 동기형이 같이 전시를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동안 했던 작업들을 꺼내놓고 쭉 훑어봤습니다.
역시나 뭔가 찝찝한 기분.
전시가 끝나고 대학원에 들어왔습니다.
내 작업에 뭔가가 부족하고 그것이 찝찝한 느낌이 드는것 같아서 고민을 해봤습니다.
작업에 그럴싸한 컨셉이나 모티브가 없어서 그런걸까 싶어서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여 작업을 해봤습니다.
근데 역시나 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찾 아왔고
우연히 카메라 300대 제작 의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간은 6주. 스케치와 도면 샘플제작 시간을 빼고 나면 남는 시간은 대략 4주.
불가능해보였지만 그땐 저도 모르게 그것을 승낙하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의 카메라를 만들던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죠.
판재를 레이져로 가공하고 그것을 접어서 제작할 수 있는 카메라를 기획했습니다.
기획서 초안을 들고 을지로에 있는 가공집들을 엄청 돌아다니며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근데 의외로 사장님들과 나누는 이야기속에서 기획이 점점 구체화되고 모르던 지식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이져로 가공된 부품들의 접합은 스폿용접으로 하고 그러기 위해서 재질은 스테인레스로. 각접기는 기계로 V컷팅을 하고 절곡집에서 접는걸로. 레버같은 원형 부품은 선반가공.
제작계획이 서고 샘플을 만들어내서 수정작업을 거치고 남은 4주동안 300개의 카메라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거의 매일을 을지로 공장에 출근하다시피하고 가서 직접 용접 및 가공 작업을 했습니다.
정신없이 6주를 보내고 300개의 카메라를 포장하고 보내고 난뒤
무언가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곰곰히 돌이켜보니 새로운 제작 방법을 알게 된것입니다. 기계가공.
적동판을 잘라서 은땜하는것 밖에 모르던 저에게 새로운 시야가 열린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2차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롭게 알게된 기계가공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주재료도 알루미늄과 황동으로 바뀌고 작업스타일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기계가공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밀링과 선반, CNC가공에 대해서.
기계가공을 통해 그 동안 카메라를 제작하면서 어려움에 포기해야했던 구조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제작하는게 가능해졌습니다.
판재를 가지고 구현하기 힘들었던 부분들이 덩어리 가공이 가능해지자 술술 풀려나가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생겨났습니다.
2차학기의 시작과 함께 기계가공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진 저는 '기계가공특론' 이라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공부 좀 해라"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무시당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아는게 별로 없더라구요.
그때 느꼈습니다. 손으로 할 줄 안다고 전부가 아니구나.
난생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시간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을 구조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또한, 수업중 수업자료로 동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 영상은 저를 엄청난 충격으로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놀라움 뿐이었습니다.
뭔가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고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이때 처음 알았으니까요.
2차학기를 마치고 다음해에 학과 조교를 하게 되면서 휴학을 하고 계속 작업을 했습니다.
몇번의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그때마다 찝찝함이 다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적 메커니즘 부분도 많이 보완되고 그로인해 전보다 사용하기 편한 카메라가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있었습니다.
새로운 제작 방법으로 인해 진보된것은 맞지만 근본 해결은 아니었나봅니다.
그래서 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민은 오래 했지만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완성도.
미완성이라는 찝찝함이었습니다.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퀄리티. 그런 것들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미 60여년전에 만들어진 카메라들보다 어느하나 나은점이 없다는것은 완성이라 말할 수 없는 타당한 근거였습니다.
위 카메라들도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고 옛날 기술로 만들어 졌음에도 지금의 내가 만들어 낼 수 없는 퀄리티를 뽑아냈다는것.
나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을 내놔야 했습니다.
원인이 단순명료했던만큼 해결책도 간단했습니다. 바로 지식의 부족. 아는게 없어서 만들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60년 전의 카메라 표면은 어떤 표면처리가 되었으며, 재료는 어떤것이며, 그 안에 사용된 스프링과 기어들은 어떻게 만들었으며....
제가 아는것은 그것이 금속이라는 것 외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왠만한 자료들이 잘 나와있거든요.
특히 youtube와 google이미지 검색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러는 어느날 수업시간에 봤던 동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저 감탄만 하면서 보았던 동영상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곳에 나온 사람들은 직접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금속을 이용해서 카메라보다 더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것을 손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
다시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들이 시계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것을 제작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까지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동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시계의 메커니즘을 핀홀 카메라에 적용해서 시간조절을 태엽을 이용하여 자동화 시키는것.
기어 제작법을 찾아내어 공부하고 밀링 선반을 이용하여 제작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구상했던 시계 메커니즘이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기어를 가공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셔터를 열고 닫는 구조를 만들었다는것에 의의를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은 높아지고 실력은 부족한 상태에서 기어의 움직임을 넣으면 멋있어 보일것 같다는 요행을 바란 탓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시계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시계 공부를 위해 유학을 계획하기도 했었고(물론 못갔지만), 시계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나누고,
시계 무브먼트와 필요 도구를 구입하여 분해조립을 해봤으며, 시계 제작에 관련된 정보들을 닥치는대로 모으고 섭렵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것을 만들어내는 도구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저 도구는 무엇일까? 저 기계는 뭐지? 어떤 원리일까? 어떤 도구와 기계를 이용하면 저런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식이 쌓여갈수록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고 만들고 싶은 것들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생각으로 그쳤습니다. 제작비용이라는 문턱에서 막히더군요.
카메라 뿐만 아니라 제품, 조명, 가구 등 장신구를 제외한 다른 금속을 재료로한 무언갈 만드는데는 그에 맞는 기계들이 필요했습니다.
기계는 작업하는 손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합니다. 도구가 없다는것은 만들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스케치를 하고 도면을 그려도 직접 만들 수가 없고 을지로를 나가야만 했습니다.
제작 비용은 역시나 비쌌고, 인터넷 자료로만 배운 지식으로 구상된 제작 시나리오는 실제로 기계를 다루는 을지로 아저씨들에게 퇴짜를 맞기 일수였습니다.
직접 그것을 다뤄보지 않고는 모르는 노하우라는것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결과물을 보면서 수정을 맡기고 또 수정을 맡기기에는 비용이 문제였구요.
학교에 시설이 충분해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이 되었을텐데... 가장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오랜 고민끝에 저는 나름 큰 결심을 합니다.
그동안 모아온 돈을 탈탈 털어서 중고 CNC를 구입했습니다. 830만원. 거기에 기타 필요한 부수자재까지해서 거의 1000만원에 가까운 지출을 합니다.
그 당시 카메라 제작에 필요한 몸체 부품 하나를 CNC가공 맡기는데 3~40만원이 들었습니다.
한번 제작하는데 부품 하나에 그정도 비용이 드니 선뜻 작업이 진행되질 않고 자꾸 정체되는것 같아 차라리 기계를 하나 사버리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된것입니다.
한두번 만들고 끝낼 작업도 아니었고 앞으로 계속 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1000만원의 투자는 분명 값어치가 있을거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대성공.
기계를 다루는 법을 터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느정도 터득하고 나니 마음껏 원하는것을 만들어 볼 수 있었고
새로운 시도를 과감히 해볼 수 있었고 생각도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직접 기계를 다루고 만들다보니 인터넷과 책에서 배울수 없었던 부분까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기계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기계가 한두푼 하는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갖게되고 직접 다루게 되었을때 나타나는 효과는 그 값어치를 훨씬 상회한다는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불가능한것을 가능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새로운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CNC에 이어 선반도 구입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시계선반을 ebay를 통해서 독일에서 공수해왔습니다. 관세까지해서 대략 250만원 정도 들더군요.
시계 선반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작성해보려 합니다. 정말 대단한 기계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금속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CNC밀링과 시계선반을 이용하여 작업을 한 결과물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시계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셔터 시간을 조절하는 핀홀 카메라입니다.
시간을 지정하고 셔터를 누르면 카메라 내부에 있는 시계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정해진 시간 뒤 셔터를 자동으로 닫히게 합니다.
처음에 시도하고 실패한 작업 이후로 2년만에 만들어 냈습니다.
2년동안 연구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 2년동안 참 많은 공부를 했고 많은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완성에 많이 다가간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아닌것 같습니다.
훨씬 더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위의 동영상에 나오는 필립뒤포가 만든 시계입니다.)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완성도 입니다.
금속을 다루는 사람이 만든 작품입니다.
저도 금속을 다루는 사람이구요.
그럼 저도 이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어요?
물론 지금은 제 실력이 부족합니다. 모르는것도 많구요.
사실 예전에 처음 보았을때는 어떻게 저렇게 하는지 감도 안왔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재료와 재질에 대해 공부하고 작업 공구와 기계에 대해 찾아보고 경험하다 보니
이제는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래서 이제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어디가 얼만큼 부족한건지. 이제 내가 무얼 해야하는지.
공부를 한다는것. 그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공부중입니다.
피니싱에 관련된 서적들도 보고
1mm~0.15mm 내외의 드릴날
1.0mm~1.6mm 탭과 다이
폴리싱 파우더
이 외에도 이러한 다양한 도구와 기계들을 사모으고 있습니다. 경험만큼 최고의 공부는 없는거거든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것은 이베이를 통해서 구입하거나 외국 사이트에서 구입하고
사용법은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편입니다.
또한 필요한 도구와 기계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시계선반에 들어가는 툴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작업에 필요한 툴이라면 만들어 사용하는것도 중요한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이 결국은 완성을 위한 노력이 아닐까요?
글 제목은 완성에 대해서 라고 썼지만
저도 완성을 이루어본적이 없네요. 계속 노력중입니다.
참고로 저는,
창의력 넘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그런 디자이너는 제 목표가 아닙니다.
진정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것이 제 꿈입니다.
누가 봐도, 카메라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름답다 느낄 수 있는 작품.
카메라라는 정체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보편타당한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완성도라는 것은 제가 꼭 넘어야할 산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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