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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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와 기계가공은 전혀 다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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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21:22 조회2,0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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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기가 끝나갑니다.
저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대학원 졸업을 합니다.
학교를 참 오래도 다녔네요 ㅎㅎ
그 오랜 기간동안 무얼 배웠는지 돌아봅니다.

처음 입학하고 실기실에서 알루미늄 40x40각봉을 실톱으로 자르던 날이 떠오릅니다.
이곳저곳에서 실톱들이 팅~팅~하고 수십개가 끊어지고
저 역시도 실톱을 10개 가까이 바꿔가며 겨우 알루미늄 각봉을 반토막 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기뻤지요. 금속이 잘린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성취감에 재밌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함정이었던거 같아요ㅎㅎ
금속을 자르고 붙이고 갈아내는 일이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밤새 투각을 하고 야작을 하며 사포질 하고..
그렇게 과제검사를 받고 학점을 받을때면 뿌듯하기도하고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지요.
그렇게 4년을 보냈습니다.
많은걸 배웠다고 생각했죠.
가끔 다른과 친구들이 금속에 대해서 물어볼 때 적동,황동,알루미늄이 아닌 다른 금속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전 많이 알고있고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 후 취직을 했고 곧 그만두고 작업실을 냈습니다.
만들고 싶은게 있었어요.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머리속에 있는것들을 구현해내는게 어려웠습니다.
학교 다닐땐 어떻게했나 떠올려보니...
항상 옆 친구들 하는거 보면서 적당히 타협하며 과제검사용으로만 만들고 종강때 버리고...
그렇게 4년을 보냈더군요.
수긍이 되더군요. 지금 내가 어떤것도 맘대로 만들지 못한다는게.
나는 아는게 쥐뿔도 없구나...
내가 아는건 종로에 나가면 누구나 아는것들밖에 없었고
내가 할줄 아는건 종로 아저씨들이 훨씬  더 잘하고...
난 특별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난 무엇이 되고픈가.
감각있고 유명한 디자이너?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디자이너?
내면을 탐구하는 작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수제작에 있어서 뛰어난 테크니션이 되고 싶었습니다.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손으로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실 첨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한건 대학입시빼곤 처음이었으니까

대학원을 다니며 처음 한것은
은땜과 실톱을 공구박스 깊숙히 묻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은땜은 제한사항이 너무 많아 활용도가 떨어졌고
실톱은 그것에 매달리다보면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일이 많아서 그것들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기계가공을 택했습니다.

학부를 다닐때 기계를 쓴다는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기계로 가공해온 작품은 땀과 노력이 스미지 않은 영혼이 없는 작업이라 여겨졌고, 
밤새 톱질하고 사포치는 애들에게 변절자 혹은 얍삽이로 낙인찍히기 쉽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기계를 쓴다는 것은 돈만 있으면 되는 일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대학원에 와서 기계가공을 독학 하면서 많은걸 깨우쳤습니다.
도구는 손의 연장이고 기계는 도구의 연장선에서 봐야한다는것을.
금속은 도구가 없으면 다룰 수가 없죠.
그리고 기계가 없으면 생각한 대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기계의 발달은 가공 기술의 발달이었습니다.
톱이 진화하여 띠톱과 와이어컷팅이 나왔고, 조각날이 발달하여 밀링과 선반이 나왔으며,
모루와 망치가 발달하여 전동망치와 프레스가 만들어졌습니다.

내가 만들고자하는 것을 만드는데 있어서 오래된 구식의 도구들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도구와 기계들은 내가 만들고자하는 창작의 범위를 확대시켜주었으며
그것을 더욱 정밀하게 치밀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데는 오래된 도구보다 훨씬 많은것을 배워야했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기계 가공을 위해서는 돈보다는 지식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기계가공과 도구들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형태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이제 금속을 전공했다는 말을 어디가서도 떳떳히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대학원에서 4년반을 보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학부 4년 동안, 대학원 다닐 때 처럼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며 보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과제에 쫒기며 목표없이 허둥지둥 보낸 세월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물론 잘 놀았죠^^ 즐거운 추억들이 많습니다. 좋은 친구들도 만났고.
그리고 그런 아쉬움과 실패를 경험했기에 대학원 4년반을 보람되게 보내게 된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어느 선배나 다 그렇듯이 제가 경험한 아쉬움과 실패를 되물려 주고싶지 않습니다.
남은 학교생활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나하나 성과를 쌓으며 보낼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제에 쫒기지 않는 방학동안 차분히 잘 생각해보세요. 무엇이 되고싶은가.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많은 것을 관찰하고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고
세계적인 트렌드를 분석하고 자료들을 모아보기도 해야 할것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내면을 성찰하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부지런히 해야겠지요. 만드는 거야 누가 만들면 어때요? 무엇을 만들것인가 무엇을 말하고싶은것인가가 중요한거겠죠.

그리고 금속을 다루는 테크니션이 되고싶다면 저랑 같이 공부해요ㅎㅎ
공부할게 참 많답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혁명을 통해 스스로 근대 산업을 만들어낸 나라가 아니죠.
강제 개방을 통해 산업기술기반을 구축했기 때문에 기계가공과 수공예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수공예의 발달과 함께 도구가 발달하고 복잡한 도구가 기계화되고 그것을 통해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밑바탕이 되었고 지금의 첨단산업까지 이어져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전통으로써의 수공예는 존중받고 보존되어야 하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며 미래지향적인 창작활동을 펼쳐야할 우리가 알아야할 기술은 지금의 첨단산업과 전통기술 사이에 있는 변화과정 속에 있는 기술입니다.
손기술과 기계가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 시대의 작품들은 정말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도구와 기계들도 정말 매력적이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습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그러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나라의 전통공예와 산업디자인의 단절된 틈을 연결하는 키(key)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과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과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제품들을 굳게 나누고 있는 문을 여는 키.
그리고 그 키가 
우리과가 금속공예에서 금속조형디자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놓쳤던 많은 부분을 열수 있는 키가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그러니까 같이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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