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 design museum 김명한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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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21:14 조회2,7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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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앞 사간동의 금호미술관에서는 요즘 이색적인 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디자인가구와
생활오브제를 수십년간 수집해온 12명의 컬렉터를 초대해 그들의 안목과 열정, 남다는 수집품을 바탕으로 오늘의 삶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디자인
형태에 대해 함께 점검해본 ‘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전이 그것이다.
12명의 디자인 컬렉터 중 국내 빈티지 컬렉션 선구자로
손꼽히는 aA design museum의 김명한 대표로부터 컬렉션에 감춰진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가구관련 컬렉션 1세대인
김 대표께서 컬렉션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 같은 경우, 물건이 저를 자꾸 불러요. 어떤 사람은 음악이 어떤 사람은 산이
그렇게 사람을 부른다죠? 사람마다 발달하는 방향과 촉이 다른 거죠. 저의 경우는 생활아이템이 그랬어요. 사업적 목적으로 수집한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끌려들어가서, 수집된 생활용품과 디자인가구들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에빠진 거죠.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느끼고요. 그렇지만 결국
컬렉션은 자기만족인 겁니다. 아주 주관적인 것이지요. 제가 수집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해외 나가기도 어렵고, 운송도 어려웠기 때문에 작은
오브제들을 핸드 캐리어로 모으기 시작했지요.
=대표님의 첫번째 컬렉션이 궁금합니다. 최초의 컬렉션은
무엇인가요?
▶토넷(Thonet) No.14 의자가 제 첫번째 컬렉션이었어요. 1980년대 중반 충무로에 가면 잡다한 헌 가구들을
파는 곳이 많이 있었죠. 거기에서 물건들을 거의 줍다시피 했었어요. 당시 저 역시 토넷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진 못했지만, 외국 인테리어잡지나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익숙했던 디자인이라 눈에 들어왔었죠. 일제시대에 건축하는 분들이나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이런 디자인의자를 들여왔었는데 워낙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던 때라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거죠. 그 시대에도 컬렉션이 존재했지만 자동차, 오디오 등 소유의 개념이 강했고, 그
다음이 패션 등이 대상이었죠. 가구는 한국 고가구가 수집되고 있었는데, 외국 가구나 실내오브제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던 때입니다.
그리고
2000년 초 홍대앞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세계적인 디자이너 임스(Charles & Ray Eames)의 빈티지 의자를
100여개쯤 들여놨는데 손님들이 ‘왜 이렇게 낡고 변변찮은 의자를 놓았느냐’며 눈살을 찌푸렸어요. 그런데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빈티지
가구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지면서‘그때 그 의자 좀 구해달라’는 부탁이 줄을 이었어요. 요즘들어서는 임스 빈티지의자들은 값이 너무 올라
컬렉션하기 쉽지 않죠.
=무의식적으로 그런 가구들의 미감을 느끼고 컬렉션을 하도록 영향을 준 생활환경이나 배경이 있을까요?
▶당시 공무원이시던 아버님 덕에 서양식 관사에서 자랐어요. 서양식 주거환경의 개념이 몸에
배어있었죠. 그리고 달력의 명화를 오려서 액자로 꾸민다거나 정원을 가꾸시는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고 내
공간이 따로 생겼을 때, 공간이 안정감을 주지않으면 못 견디겠더라고요. 벽지, 페인트, 의자 하나라도 마음에 들어야 했고, 공간과 일체감을
느끼는 게 중요했죠. 그래서 제가 속한 공간들, 카페이거나 레스토랑이거나 디자인뮤지엄 등의 내외부를 지속적으로 디자인 아이템들로 바꿔가는 일을
진행했던 겁니다.
=컬렉션 대상에 대한 관심사의 변천사는 어떠한가요?
▶저는 시야와 시각이 굉장히 다중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동시에 다양한 관심사를 갖추고 있는 편이지요. 컬렉션 대상 역시 보통은 한 시기의, 한가지만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제 경우는 동시에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컨템포러리 그리고 프로방스 스타일까지 모두 좋아하죠. 그 시대의 조형성이 그 시대 문화에서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다양한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곤 합니다. 요즘은 빅뱅의 블루라는 곡을 즐겨 듣고 있어요.(웃음)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에너지가 있다고 믿거든요. 아이폰은 문명이지만 그 안에 컨텐츠는 문화잖아요. 저는 그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빈티지, 클래식, 앤티크 등 다양한 디자인들을 통하여 그 시기의 문화를 보는 거예요.그리고 각기 다른 조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직접 여행해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쌓는 편이예요. 예를 들어 한 때 데니쉬 가구에 관심을 집중적으로 가졌는데 그들의 일상에 데니쉬 디자인이 어떠한 영향과 관련을 맺었는지 보려고 여행을 갔었죠. 그런데 핀율(Finn Juhl)이나 한스 베그너(Hans J. Wegner) 처럼 유명한 디자인 가구를 그 나라에서도 30%도 채쓰지 않더라고요. 그 나라 사람들도 클래식한 과거의 것을 더 선호하더군요.
=그렇더라도 컬렉션의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가구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은지 30년이 넘었어요. 1980년대 초반에는 가구를 잠시 만들어본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제 자신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도 없었던 탓에 자신이 없어 계속 미뤘어요. 그렇지만 컬렉션을 하면서 계속해서 구조적이나 조형적으로 특별한 것들을 모으다 보니 그 중에는 유명하지 않은 아이템도 50%쯤 되었어요. 보통 유럽에서도 그렇고 유명하고 이름있는 디자인만 수집하기 마련인데, 제 경우는 이러한 (이름없는) 디자인 아이템들이 리에디션(re-edition)으로 확장시키기 편했어요. 조형과 기능이 완벽하게 만나는 가구들과, 현실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가구들을 중심으로 컬렉션하죠.
=그렇다면 대표님처럼 컬렉션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필요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기본조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어느 시대에 어떤 조형이 나왔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말이죠. 디자인이라는 것에도 트렌드가 있고, 근본적으로는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예를 들어 1950년대 이후에 철로 된 가구들이 많이 나오게 된 이유는 당시에 판형판금기술이 발달했던 전후 맥락에 따릅니다. 이러한 기술로 냉장고가 발달하고, 비행기, 버스 등 교통체계가 크게 발전하면서 금속산업이라는 것이 생활 전반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게 됐죠.
=동시대 문화의 변화추이에 대한 안목과 과거 역사와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공감하지만 컬렉션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여전히 막막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컬렉션을 하기 좋은 조건인 것같아요. 과거에는 정보나 지식을 쌓을
곳이 없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길은 더 더욱 없었거든요. 그런데 현재는 미술관, 갤러리, 카페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목을 높일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져 있으니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식과 정보는
많아져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개인의 판단인 거죠. 그것은 10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대표님과 같은 컬렉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같은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모델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그리고 컬렉션이란 경쟁의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죠. 컬렉션이 일상에서의 즐거움이자 에너지 요소가 되어야지, 위험함을 야기하면 곤란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지속해왔고요. 처음부터 전문적인 딜러나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컬렉션을 하면서 판다는 생각을 먼저 하면 그때부터
아이템에 매이게 되는 거죠.
=한국인들은 삶을 구성하는 컨텐츠가 너무 획일화된 듯합니다. 그에 반해 대표님께서 지속적으로 해오신
컬렉션은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다양화되고 세분화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데요.
▶저는 컬렉션을 하고, 그것을 담는 공간을 꾸미는 게 저만의 즐거움과 만족때문이었기에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aA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면서 달라졌어요. 너무나 다양성 없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놀면서도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10~20대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죠. 이번 전시에 참여한 30대들, 제가 ‘aA키즈’라고 부르는 Vintage Factory나
dansk같은 아래 세대들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들 모두 다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니 말이죠.
저 역시 20대에는 갈등이
심했어요.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에겐 엄청난 콤플렉스를 느꼈고, 제도권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제도권과 제가 코드가
맞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난 뒤,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죠. 상대적 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회구성원으로써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아이템을 선택해보고
남과의 경쟁이 적은 분야를 파고들었지요. 예를 들어, 아지오
같은 경우도 1990년대 초엔 파스타 집을 차릴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었죠. 다들 말렸지만, 그때 저는 포만감으로 먹는 음식뿐 아니라 멋과
스타일로 먹는 음식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컬렉션을 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컬렉션을 하되 동반자(가족)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아요. 돈에 가치를 두지 말고 일상의 소소한
것에 가치를 두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해요. 상대방과 비교하지 말고 내 스스로 중시을 잡고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식과
선택의 지적 능력’을 만들기 위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하고요. 산업사회에서 소비 욕망도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지적인 소양이 있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거든요.
=이번 금호미술관 전시에서는 1950년대 영국과 프랑스 서민가정에서 엿보이는 가구와 패브릭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계신데요.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번 전시에서 저는 수십 년 이상 실생활에서 임상을 거쳐서 나온 디자인이자 마케팅을 거치지
않은 제품들 위주로 꾸몄습니다. 사실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된 후부터 마케팅이 시작되었는데, 이번 전시는 그런 마케팅이
전혀 필요 없었던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고 보시면 됩니다. 유명하지 않아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나 편견은 버려야 하는 것이고, 미술관에서
‘벼룩시장’의 컨셉으로 기획된 전시형태가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성을 주기 위해 관람객이 만져 보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이같은
연출은 미술관 전시의 획일성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선 벼룩시장이 일상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그 역사가
20여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몇몇 사람들 사이의 멋 정도로만 인식되는 실정입니다. 유럽에서는 벼룩시장이 물물교환과 리사이클의 행위이며, 일상의
평범한 한 단면인데 말이죠.
= 마지막으로 향후 컬렉션의 방향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제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소유 보다는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디자이너들과 협력관계를 맺어 제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시키려고 해요. 새로운 디자인산업의 실질적인 단초를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지금껏 원목가구를
공예적으로 풀어놓은 사람들은 있지만 산업적으로 풀어놓은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저는 비즈니스를 했던 사람이라 산업을 알고, 동시에 소비자도
어느정도 알아요. 이 가운데서 접점을 찾겠다는 거죠. 가격과 디자인을 두루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전통적인 공예방식의 80%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대량생산방식에 따라 합리적인 가격대로 맞추겠다는 거죠. 이러한 생각들은 제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컬렉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인터뷰 진행=금호미술관 학예팀>
http://news.heraldm.com/view.php?ud=20120402000230&md=2012040214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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