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퀸 "해골은 죽은 자이면서 산 자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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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3 21:18 조회2,4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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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죽음의 작가' 케이트 모스 형상화한 조각 등 20여점, 내달 3일까지 가나아트센터서 첫 전시 |
1991년 영국 런던의 사치갤러리에 눈을 감은 한 남자의 검붉은 머리 조각상이 전시됐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무엇인가를 얼려 만든 두상의 재료가 작가의 몸에서 뽑아낸 4리터의 피였기 때문이다. 혈액, 분뇨, 태반 등 신체의 일부를 소재로 생명과 죽음의 미학을 펼쳐보이며 세계적 스타작가가 된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44).
세계에서 가장 작품값이 비싼 생존작가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yBa(young British artistsㆍ1980년대 후반 등장한 영국의 혁신적 젊은 미술가들)를 대표하는 그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1일 시작된 국내 첫 개인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마크 퀸 특유의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조각과 2005년부터 시작한 대형 유화 등 총 2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자신의 피로 만든 두상 ‘셀프(Self)’나 배설물로 캔버스 위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빚어낸 ‘똥그림(Shit Paintings)’, 갓난 아들의 태반을 얼려 만든 조각 ‘루카스’ 같은 ‘엽기적’인 작품은 없다.
대신 처음 소개되는 극사실의 대형 유화작품 10여점과 세계적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를 모델로 육체와 내면, 욕망과 시선의 문제를 제기하는 조각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전시장을 떠나서도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는 작품은 양쪽 벽에 가부좌를 틀고 마주앉아 어둠 속에 제 그림자를 쏘아대고 있는 두 해골 조각. ‘환영에 대한 명상’이라 명명된 이 작품은 벽에 나사로 부착해 공중에 부양해 있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그게 바로 환영이고 착시예요. 해골은 죽은 자로도, 산 자로도, 다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삶은 명상이나 고찰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것 자체라는 걸 포괄적,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죠.” 보고 있으면 어쩐지 숙연해지는 이 작품은 담론의 미학자다운 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요가 하는 여인을 상하 대칭으로 이어붙인 ‘끝없는 기둥’은 그의 친구 케이트 모스를 형상화한 작품 중 하나. 마크 퀸은 이 작품을 “장애인을 주제로 한 조각상 ‘임산부 앨리스 래퍼’ 같은 전작들과 연계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육신이라는 형상 안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명코자 했어요. 장애인이나 슈퍼모델처럼 각기 다른 육신 안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내 생각에 케이트 모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에요. 하지만 그녀가 실제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녀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그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육신은 사람의 욕망을 표현해주는 빈 껍데기, 실제가 아닌 환영에 불과하니까요.”
누가 마크 퀸 아니랄까봐 그의 음란해 보일 정도로 화려하고 거대한 꽃들에서는 꽃그림에서 흔히 느껴지는 서정적 아름다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곳엔 향락과 퇴폐, 죽음과 야생의 독한 이미지들이 피어오른다.
“런던의 꽃가게에서 사온 꽃들을 배열해서 사진 촬영을 한 후 그림을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른 계절의 꽃들을 사다가 추가로 그리기를 반복했어요. 그 결과 같은 화면 안에 각기 다른 계절의 꽃들이 공존하게 됐고, 캔버스엔 계절을 알 수 없는 시공간이 창조됐죠. 과연 자연적이란 게 어떤 것인지,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커다랗게 확대된 극사실의 그림이 더없이 인공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셀프’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했으며, 왜 그래야만 했는지.(5년에 한 점씩 총 네 점이 제작된 ‘셀프’ 중 하나는 김창일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이 소장하고 있다.)
“두상 제작에 들어간 4리터의 피는 현재 제 몸에 흐르고 있는 혈액의 총량과 같아요. 5년에 걸쳐 6~8주마다 한 번씩 의사를 찾아가 1파인트(약 0.57리터)씩 피를 뽑았죠. 나는 내 조각들이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내 삶에 대해 표현하길, 내 삶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를 원했어요.”
신체만큼 삶의 경험이 축적돼 있는 공간은 없다. 게다가 얼려서 유지되는 조각이라는 작품 외적 요소는 전력이 공급돼야만 형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근원적 한계도 갖고 있다.
한때 알코올중독자였던 마크 퀸은 그 외부 전력을 “어쩔 수 없이 필요를 느끼는 ‘중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기까지 경험한 인생의 어두움과 불안이 인간과 삶에 대해 더 많은 애착을 느끼게 했다”면서.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열린다. (02)720-1020
출처 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7/h20080714023929843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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