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문길 ‘제2 인사동’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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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3 21:25 조회2,2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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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m 주변 한옥·전통상점 빼곡…서울시, 역사·문화거리로
안녕하세요. 서울 종로구에 사는 돈화문길입니다.
어딘지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은 창덕궁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저는 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종로3가역을 지나 단성사·피카디리 극장에까지 이르는 1850m의 길입니다. 그리 길지 않고 너비도 20m에 불과해 널찍한 종로나 율곡로의 그늘에 가려져 살았죠. 그렇지만 제가 품은 사연만큼은 서울의 어느 곳 못지 않답니다.
일단, 제 동쪽에 있는 권농동은 그 유명한 홍길동이 소시적에 뛰놀던 곳입니다. 허균의 소설에서 홍길동이 아버지에게 ‘호형호제’를 청했던 농포동은 실은 우리 동네입니다. 당시 최고급 주택가였던 이곳에서 서얼인 길동은 양반사회의 부조리를 목격했던 거죠. 허균이 이 동네에 살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권농동에는 또 내농포라는 궁중 전용 밭이 있어서, 궁중의 내관들이 이곳에서 채소를 길러 임금님의 식탁에 올렸습니다. 일종의 왕실 전용 야채밭 겸 일반 백성들에게 농업을 권장하려는 ‘전시행정’의 현장이기도 했죠.
권농동의 아래쪽에 위치한 묘동은 바로 옆에 위치한 종묘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현재 단성사가 자리잡고 있는 터에는 현재의 검찰·경찰에 해당하는 서슬 퍼런 좌포도청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우포도청은 현재 광화문우체국 자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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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북편을 위쪽의 와룡동에는 창덕궁와 창경궁이 있습니다. ‘용이 누운 마을’이라는 뜻의 와룡동이라는 이름도 이 곳에 궁궐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지요. 와룡동의 아래편 익선동에는 철종이 강화도에서 야인으로 지내던 시절 함께 고생하던 둘째형 영평군을 위해 지어준 누동궁이 있었습니다. 익선동에는 또 태종이 왕의 근친과 외척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신설했던 돈녕부가 있었지요.
말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제 주변에는 골목마다, 집집마다 역사의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아직도 전통의 숨결은 남아있어서, 길의 양쪽 뒤편에는 한옥 130여채가 모여 있고, 길가에는 전통 한복집 20여곳, 전통 악기점 10여곳, 전통 공예품점 3~4곳이 늘어서 있죠.
이곳에 서울시가 인사동처럼 역사·문화의 거리를 조성한다고 하니 반갑습니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한옥 주인과 합의하거나 도시계획시설로 묶어 한옥을 매입한 뒤 수리해 무형문화재 활동공간이나 공예품점, 화랑 등으로 꾸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네요. 그런데 서울시의 계획이 이미 이 동네에 알려졌는지 지난 1년 사이 집값이 30~40%나 뛰었다니, 걱정이 앞서네요.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3054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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