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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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황금빛 유혹에 사로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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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3 22:26 조회1,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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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황금빛 유혹에 사로잡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지극히 대비되는 두 가지의 요소가 공존하는 경우는 꽤 무수히 존재하곤 한다. 그 수많은 요소 중에서 ‘퇴폐’라는 요소와 ‘화려함’이라는 요소가 공존하는 곳, ‘정적임’과 ‘역동적임’이 공존하는 곳, ‘괴기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 바로 클림트의 작품이 대표될 수 있다.
 중간고사가 웬만치 끝나가는 약간은 여유로운 주말, 비 내리는 모습도 여유가 있어 보이던 날 아침, 그 공존의 어울림을 눈앞에서 느끼고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최대의 전시, 클림트의 마지막 단독전시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내건 전시이기에 한창 추웠던 겨울의 막바지, 추위를 피하고자 온 종일 방 한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던 나는 클림트 전을 보고 싶어서 말 그대로 클림트의 황금빛 유혹에 휩싸여 상당한 기대감을 안은 채 언제일지도 모르는 클림트를 만나러 갈 날만을 학수고대하였었다.
 그러나, 근래에 세계 거장의 전시들을 계속해서 놓치는 바람에 이번 클림트 전은 기필코 가야지 했던 나에게 클림트 전을 다녀온 사람들은, ‘사람만 많지 볼거리는 없다.’부터 시작해서 ‘스케치 전을 보는 듯 했다.’라는 평까지 내 부푼 기대감을 무참히 없애버렸다. 거기다가 비싼 가격 탓에 줄줄이 이어지는 악평들도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마음을 비우고 전시를 볼 날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5월 2일, 5월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쯤, 비도 부슬부슬 오고 전시가 막을 내리는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여전히 클림트의 유혹을 향한 발걸음은 끊임없었다.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었던 마음은 이미 미술관 안에 발을 디디기 전부터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그날은 지금까지 본 전시 중에서 가장 힘겹게 전시회를 본 날이었던 것 같다. 그림 앞에 서기가 그야말로 경쟁이었고, 중간에 쉴 곳도 없어서 지친 다리를 끌며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다녀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아 놨던 첫 번째 그림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있는 클림트 초기 회화 작품인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이다. 섬세한 우윳빛 피부와 고혹적인 빛깔의 까만 드레스가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대비감을 주며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클림트에게도 이런 엄청나게 사실적인 작품이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여인의 목과 팔에 둘린 장신구들은 진짜 목걸이와 팔찌를 두른 것 마냥 그림에서 영롱한 자태를 내뿜고 있었다.
 인파 속에서 힘겹게 발을 떼던 전시의 중반 즈음에는 <베토벤 프리즈>라는 말로만 듣던 대작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대작을 음악과 함께 바로 앞에 서서 감상, 아니 체험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은 영원히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을 순간이었다. 무거웠던 머리와 지친 발걸음이 그 벽화 앞에 서자마자 가벼워졌고, 눈을 벽면으로 이동하자마자 피로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서론-본론-결론으로 구성된 <베토벤 프리즈>를 충분히 감상하고 나서, 이어지는 그의 소장품과 동시대 작가들의 몇 작품으로 잠시 쉼표를 찍고 <아담과 이브>, <유디트 1>등의 유화들을 대하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팜므파탈의 대표적 여인들을 그린 작품인데, 그 여인들에게서 퇴폐적인 화려함이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게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앞서 말한 대비되는 두 요소의 공존이 어울림을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담과 이브>에선 죄의식으로 고개를 숙인 이브를 어떤 여인보다도 당당하게 심지어는 뻔뻔하게까지 느껴지게 나타내었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유디트 1>에서의 유디트는 처참히 잘려버린 홀로페론의 머리 위에 살포시 손을 얹고 있는데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에로틱하여 치명적인 매력을 담고 있었다.
 이 대작들 이외에도 그의 여러 작품에서 직설적인 관능과 에로티즘, 심지어 괴기스러움까지 나타내었지만, 결코 단순히 관능적이다, 괴기스럽다는 표현으로 끝나지 못할 정도로 모든 작품이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신비로웠다.


 <키스>를 비롯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들은 아쉽게도 많이 오지 못하고 습작들이 대부분의 전시장 벽을 채웠고, 당대의 작가들과 클림트의 소장품 등으로 잔여 볼거리를 주었던 전시였지만, 수많은 혹평으로 낮춰진 나의 기대치 덕분이었을까, 나는 나름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많은 습작, 스케치들은 그만큼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밑거름이었고, 몇 개 안 되는 유화작품들은 그래서 더 소중했고, 그만큼 더 오래 내 발걸음을 머물게 하였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이제는 작은 컴퓨터 화면이나 손안의 책에서 보는 그림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전시장에서 나오는 나의 마지막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기회가 되어 열흘 여 남은 기간 안에 한 번이라도 더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느 전시회에서도 그렇듯이, 클림트의 원본 작품들을 마주하였을 때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그 아우라에 압도되면서도 점차 느껴지는 일체감에 황홀한 기쁨을 맞을 수 있던 어제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가 황금빛 유혹을 남기고 간 마지막 여행지가 우리나라라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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