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탐방 | 동문탐방 40호 /새로운 문화공간의 시작 땡스북스, 이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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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5 01:46 조회3,6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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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가 뜨면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요즘, 새로운 것들만큼이나 사라져 가는 것들도 그 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동네 서점이지요. 커피 전문점과 휴대폰 대리점들이 부쩍 늘어나는 동안, 골목골목 자리하고 있던 서점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간혹가다 발견하는 동네 서점은 책장에 문제집이 빼곡해 소설 한 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서점들뿐이지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변화를 가져오는 법, 여기 새로운 동네 서점을 꾸려나가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홍대 앞 큐레이션 서점 '땡스북스'의 이기섭 대표님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동네 서점 같지만 들여다보면 색다른 문화 공간으로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땡스북스', 그리고 이기섭 동문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Q. 안녕하세요, 선배님과 땡스북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단 여러분과 20여 년 선배이지요. (웃음) 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공예과로 입학해서 섬유미술과로 졸업했어요. 직업은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지금은 땡스북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땡스북스는 홍대 앞 큐레이션 서점이고 이제 4년이 됐어요. 서점에 관한 이야기는 차차 더 하겠습니다.
Q. 대표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홍익대학교 섬디과를 졸업하셨는데, 학창시절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셨나요?
A. 아무 생각 없었죠, 정말로! 서점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어요. 그때는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입학할 88년도 당시에는 공예과였어요. 지금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인가요? 이름이 너무 길어. (웃음) 학과가 아마 89년도부터 개편이 됐을 거에요. 입학하고 나서도 전공보다는 <홍익미술>이라는 미대 학술지 편집부 일을 하는 데 더 흥미가 있었어요. 그냥 재밌는 것을 찾다 보니 그 일이 재밌었던 거죠. 그런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지금 제가 땡스북스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책 만드는 일을 했으니까요. 학교 다닐 땐 책 만드는 걸 좋아해서 시디과 수업을 다 들었어요. 그때는 전공 교류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타과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죠. 저는 별난 학생이었어요.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랬었던 거니까요. 지금은 많은 학생이 취업 잘 되는 학과를 복수 전공하려고 하는데, 저는 학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요새 스펙이나 이력서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데, 그게 결코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자기 계발의 궁극적 목적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빨리 찾는 거지, 내 스펙을 사는 곳을 찾기 위한 게 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사회가 원하는 것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 인지해서 그 분야의 실력을 쌓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신이 나는 일을 만들어야 해요, 누가 나한테 줘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학교 다닐 때 그런 걸 빨리 알면 졸업 후 뭘 할지 결정이 서니까 좋죠. 저는 학교 다닐 때 제가 졸업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그게 재밌었어요. 그러다 보니 졸업하고도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된 거죠.
Q. 대학원에서 선학을 전공하셨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선학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대학원에서 미술 관련 전공이 아니라 선학을 전공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선학에서 어떤 것을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A. 졸업 후, <홍익미술>이라는 학술지를 만들었던 경험을 발판으로 자연스럽게 편집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홍디자인이라는 회사였는데, 지금도 편집디자인 분야에서는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맡고 있죠. 덕분에 첫 직장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이후 함께 <홍익미술>을 편집했던 사람과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 근처에 동국대학교가 있었어요. 그런데 전 불교를 믿는 건 아니고, 무교인데 종교 자체를 좋아해요. 인류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와 관련이 깊고, 개인의 인생에서도 신앙은 소중한 가치잖아요. 종교는 또 궁극적으로 철학, 미학 이런 것과도 비슷하죠. 이런 흥미가 있어서 생뚱맞게 가게 된 거에요. 저는 디자이너들이 자기 전공만 열심히 판다고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서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 직업은 여전히 그래픽 디자이너거든요. 저는 시각디자인과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그 분야를 아예 안 배우지도 않았어요. 어디에 적을 뒀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관심 있는 것을 누구보다 충분히 많이 하면 배움이 쌓이고 실력이 느는 거예요. 선학은 선불교(Zen)를 배우는 학문인데, 선불교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궁극의 최소한만을 남기는 것'이에요. 이런 면에서 선학과 디자인이 비슷한 거죠. 그래서 선학을 배우는 게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은 형태에서 기능과 효율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야잖아요. 선학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원리에서 디자인 본연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어요. 저는 대학원 입학 후 학업과 사업의 병행이 어려워지면서 회사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땡스북스를 차리게 됐어요.
Q. 땡스북스처럼 이런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디문화들은 쉽게 자리 잡고 널리 알려지는 것이 어려운데, 그런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A. 왜 없었겠어요. 서점은 가게잖아요? 제 인생에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죠. 이 서점을 막 만들기 시작했을 때 작은 서점들이 많이 없어져 갔어요. 단지 책방이 없어져서 시작했다기보다는 당시 사회적으로 변해가는 여러 가지 것들을 반영하고 싶었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의 동네 서점이 참고서만 빼곡하게 쌓아놓는 것과 달리 유럽의 동네 서점은 그 동네의 문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뭔가 새로운 시도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컸고 그래서 땡스북스를 열었어요.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만드는 새로운 실험을 한 거죠. 이 일을 준비할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할 일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침에 딱 눈을 뜨면 할 일을 막 적는데, 신이 나서 일하러 나가는 거죠. 삶이 그렇게 활기차기 쉽지 않잖아요. 나에게 스스로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래야지, 안일하게 살면서 즐겁고 재밌는 일이 저절로 생기진 않죠. 그냥 해보는 거예요. 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지,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이 정도면 하다 안돼도 수업료로 감수할만하겠다.' 정도의 예산만 정해놓고 딱 그 안에서만 썼어요. 가구도 사서 넣은 게 아니라 온라인 가구 전문점의 쇼룸 역할을 해주기로 하면서 들여온 거고. 궁하니까 그런 아이디어도 생기더라고요. 많은 어려움을 이런 식으로 헤쳐나갔어요. 쉽게 가면 힘든 일을 겪을 때 그만뒀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땡스북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기는 많은 일은 어려움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Q. 개인적으로 땡스북스의 책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이런 건 누가 살까?'라는 장난스러운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땡스북스가 사람들에게 어떤 서점으로 다가가길 원하시는지, 땡스북스만의 콘셉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홍대 앞은 이태원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다양성이 가장 존중되는 곳이죠. 동네 서점 땡스북스의 콘셉트는 '우리 동네'인 홍대에 어울리는 '다양성의 존중'이에요. 우리 서점에 있는 다양한 책들을 단지 찾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노출을 안 시키면 우리 서점만의 색깔이 안 드러날 거예요. 많은 사람이 사지 않더라도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한 번 펼쳐볼 수 있게 해 놓고 서점에 오는 즐거움을 주는 게 우리 서점만의 정체성이죠. 저는 직원들에게 항상 우리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라고 말해요. 그래서 저는 땡스북스가 비록 동네 서점이지만 단 한 번도 '동네 서점이 어려우니 책을 사주세요.' 식의 동정심에 호소한 적이 없어요. 우리의 라이벌은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아니죠.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잣대가 달라야 해요. 각각의 서점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할인, 다양한 책, 편리성 등)을 골고루 즐기는 게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옳고 그름을 떠난 다양성의 문제죠.
Q. 홍대 앞의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홍대 앞의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혹시 앞으로 어떻게 변했으면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저는 이십여 년간을 홍대 앞을 지켜봤어요.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전 시대적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봐요. 최근의 상황이 안타깝지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죠. 물론 심한 횡포들은 바로잡아야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들이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생산자들은 아주 현명해져야 해요. 그래도 시대적 흐름 속에서 홍대 앞 문화만의 혁신과 다양성을 대신할 곳은 없다고 봐요. 홍대만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에 홍대의 범위가 넓어지고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시대적 흐름에 개인의 창작 의지가 꺾이기보다는 지혜롭게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거죠. 시대적 흐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Q. 마지막으로 꿈을 가진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일단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아주 다양하죠.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될 거로 생각하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과 열등감 같은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이끌 지속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할 거예요. 우리 후배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오면 돈을 좀 덜 받더라도 오래오래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 힘들더라도 한없이 즐거운 거고,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제풀에 꺾여서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려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리고 좋아하는 일도 어떤 것을 얻으려는 욕망 때문에 하게 되면 장애물 앞에서 쉽게 무너져내릴 수 있어요. 어떤 일이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고, 순수하게 하는 일이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일을 찾아서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동문탐방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탈한 웃음 속에 담긴 여러 가지 당부와 배려로 가득 차 무척이나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며 머쓱해 하시다가도 진지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요즈음의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봐 주시고, 때로는 단호한 말투로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의견도 들려주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런 소중한 시간을 내주신 땡스북스 이기섭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88학번 이기섭
http://www.thanks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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