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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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al Value - 유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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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5:43 조회7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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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아려움으로부터 졸음에서 깬다. 이제 고희(古稀)를 넘어선 어머님께서 “맛있어!”하시며 그 밤에 시골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다 놓으신 건빵이며 우유의 의미를 안다. 오래사신이의 가벼운 주머니를 마흔이 넘어선 막내아이가 더욱 가벼이 하여 기쁜 마음으로 먹어가며 밤늦도록 작업하던 추억을 떠올린다.

 

만남

8월 어느 날 평소 굳이 지나지 않아도 될 뒷길을 터덜터덜 걷다가 봄날 언젠가 우연히 길에서 만났던 이가 생각나 그리로 스민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아내가 관리하는 갤러리가 이달 말경 비어 한가함으로 하여 작업장과 집 안팎 여기저기 버려지듯 흩어져 있는 삶의 부스러기들을 가져다 놓기로 한다. 뜻밖의 일이다.

만남2

그 후 며칠 뒤이던가. 시내에 볼일이 있어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 저만치 앞서 조치원 쪽을 향하는 2차선 예날 1번 국도변 길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산모퉁이를 돌아 걷던 젊은이가 손을 흔들기에 차를 세운다. 그는 조금은 절뚝이며 기쁨으로 달려와서 가는데 까지만 이라도 태워달라기에 문 열어 타라한다. 그리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는 무전여행(無錢旅行)중인 요즘 보기 드문 학생이다. 더욱이 우연히도 내가 강의 나가는 학교를 휴학하고 입영 날짜를 받아놓은 학생이란다. 조금은 쉬어야 될 것 같은 생각에 함께 작업장으로 가기로 한다. 작업장을 둘러 본 후 식사를 하며 이야기 하던 중 전공은 다르나 며칠간 나의 작업을 도우며 함께 지내기로 한다. -하승훈- 나도 기쁘고 그도 기쁜 우연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9월 2일인가 3일인가 입대인데 지금쯤 어디선가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겠지...... 그 며칠 사이에 스스로 촛대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며 철로 만들어 무겁지만 소중히 배낭에 넣어 가져갔다. 나는 젊은 친구의 삶이 그 무게만큼 가벼워지길 기대하며 아쉬운 이별의 뒷모습을 한참토록 바라본다. 그리고 난 그 덕에 새로운 작품을 상상하게 되었다.

 

모루 너머로 바라봄


건너 뛴 세월을 잊자. 어차피 헝클어진 추억들을 차라리 잊자. 오히려 난 언젠가부터 고맙게도 내 삶이 지워진 만큼 젊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죽지 않고 살아서 공연히 그때를 되새길 필요가 있는지를 되묻곤 한다. 내가, 전(前)의 내가 아니며 어떤가. 기왕이면 멋모르고 날뛰던 그때가, 가방에 단소 찔러 매고 종일토록 걸어도 온 세상이 마음에 차지 않아 그 어떤 곳에 있어도 “나”뿐이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따름이다. 그래서인가 잊었지만 언뜻 언뜻 마구 솟아나는 기억들이 모루너머 타오르는 화덕의 불꽃 속에서 상상력을 안고 뜨거운 산물로 다가서 생태적한 “몸”이 되어버린다. 그래선지 나의 작업은 몸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일은 무위적(無爲的) 작업 반복을 통해 물질 자체의 상상력(물질적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것에서 시작되어 나의 형상화 욕구와 합치되는 되는데 까지 전일적(全一的)으로 진행된다.
이 밤 코끝을 스치는 모기향 앞에서 조차 자유롭지 못한 몸은 흐느적댄다. 신화며 실존이며 놀이며 노동이며 그 모든 것들은 전시장 문고리 주위에 맴도는 기다림 또는 아쉬움의 지친 마음속에 녹아 가라앉는다. 저 망각의 끄트머리에 다가섰다가 다시 돌아온 내가 세상살이에 내몰려 잊어서 오히려 평안했던 혹은 방심(放心)했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다보면 어찌 그리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함께 다가오는지...... 세월을 건너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모루와 바이스에 낀 거미줄은 게으름인가 행복인가.
비틀거리는 내가 안길 곳은 어디인가.
더러 몸이 온전치 않음을 핑계로 허물어진 나 자신을 정당화시켜 버리는 비례(非禮)는 불비(不備)아닌가.
중세적 노동이, 밀레니엄시대의 쓸데없는 담론보다 투덜대며 정 때기를 기다리며 내리치는 망치질이 나에게는 일상이다. 이제야 종일 걸어도 어머니 품안에 있음을 깨달은 난 늦은 밤 망치질 소리에 잠 못 드시고 타주신 커피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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