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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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물이 느끼는 일상의 감동 - 추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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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5:29 조회9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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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동물은 감정적 적응력이 어찌나 좋은지 일상에서 자주 생기지 않는 큰일을 만나게 되면 당시에는 혼란스러워도 곧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마음에 단단한 집을 지어가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성장이라는 것은 마음의 집을 지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어떤 집은 다소 부실해서 잦은 외풍에 무너져 내리는 허약한 집도 있고, 외풍은 견딜지 몰라도 외롭게 지낼 수 밖에 없는 넘어가기 어려운 벽으로 둘러싸인 집도 있고, 집이라기 보단 그저 은신처 정도만 만들어 두고 누군가 슬쩍 보고 지나가도 바람이 불어도 그저 거기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자취만 있는 집도 있겠다.
 
믿었던 마음의 집이 무너져 내리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다. 최소한 한번쯤은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할 텐데, 내게 그런 경험이 처절하게 온 때는 대학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게으른 사춘기로 인한 성장통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잔잔한 감동을 조금씩 들이키면서 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과식하듯 일을 겪다 보면 마음에 아름답게 새겨질 것도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로 남는 모양이다. 무너져 내린 벽을 다시 더 단단한 재료로 쌓고 붙이고 하면서 비바람에 견디는 최신식 집을 짓는 것이 아마도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 일 것인데, 내 생각에 아마도 나는 집짓기를 일부러 열심히 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이는 반 문명적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인생의 관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고 관성과 싸워나가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치관과 신념을 완전히 바꾸게 된 시점이 된 것이다. 그저 내 마음은 바람이 불어도 폭풍이 와도 엉덩이를 붙이고 몸을 가릴 수만 있기를 바라는 정도의 은신처가 되기를 바랬다.
 
그때부터인가 보다. 집을 일부러 크게 단단하게 짓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보인 것이 일상의 감동의 시작이었다. 밥 지을 쌀을 씻으면서 쌀 알갱이 하나 하나가 흐르는 물에 움직이는 것이 감동이라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봐졌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내 손 안의 쌀 알갱이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더라. 작은 희로애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동이란 것은 걸작을 보고 느끼는 벅차게 끓어오르는 무엇만이 아니었다. 아마 그래서일까, 시간을 되짚어 생각하면서 나는 친구들보다 이른 가정생활과 육아를 하게 된 이유를 이 일상적인 감동을 위해서 그랬다고 스스로 변명하게 되었다.
 
유기물이라 취급 당해 자주 분노하지만 그래도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갖고 싶다며 평범한 생활을 지향하며 고통을 공유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99%일 것이다. 그저 분뇨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기에 어떻게든 1%안에 들기 위해서 피나게 노력하며 경쟁하던 그 유기물들이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집단 지성으로 불리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자랑스러운 99%의 세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마운 동료 99%들이 있는 것이다. 증오와 싸움만 없다면야.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떠넘기는 감동은 대체로 슬픈 것이다. 이 시대의 작품은 상처를 자극하며 재현시키는 것보다 증오의 대상을 만드는 계기를 서로 소통하게 하고 어루만지며 어울리게 하는 것에 있기를 희망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내 일상에서라도 증오와 싸움의 계기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일에서 화해와 타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결과물로 소통과 융화를 유도해 낼 수 있을까. 보노보처럼 살고 싶은데.
 
내 모순된 감정 조절도 어려워하면서 화합을 원한다니, 한숨 쉬며 먼저 소통과 융화는 내 자아와 먼저 해야한다고 다잡게 된다. 옆집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은신처를 만드는 것을 늘 생각하게 된다.
 
바램은 그렇다. 거창한 집을 짓지 않겠으니 내 집이 초라하더라도 누구나 앉았다 갈 수 있는 기댈 곳 한쪽 있고 앉을 자리 하나 더 있는 은신처만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한쪽 엉덩이라도 붙이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작을 보는 감동이 아닐는지.
 
그런 사람이 된다면야 가치 있는 위대한 유기물이 되는 것이겠다.
 
지금 난 변해가는 내 집은 어떤 사회 시스템에 잘 적응할까 늘 고민하면서 왜소한 집을 겨우 지키고 있다. 지금은 고맙게도 아이가 거친 흙 바닥을 아직까진 불평 없이 앉아서 긴 이웃이 되어 주고 있다. 이후에 보잘 것 없는 흙 바닥에라도 엉덩이 붙이고 같이 앉을 사람이 있을까. 가능한 많은 이웃이 내 은신처에 들어가고 나가며 웃고 지나가며 감동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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