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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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 민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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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팀 작성일17-09-04 16:34 조회1,4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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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
너를 내게서 깨끗이 지우는 날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랑해 오늘도 얘기해
믿을 수 없겠지만
안녕 이젠 그만
너를 보내야지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

참 신기한 일이야 이럴 수도 있군
너의 목소리도 모두다 잊어버렸는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무 생각 없이 또 전활 걸며 웃고있나봐

사랑해 오늘도 얘기해
믿을 수 없겠지만
안녕 이젠 그만
너를 보내야지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
.
(하략)
 
 
1999년인가, 2000년이었던가..이제는 제법 시간이 많이 지나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아무튼 롤러코스터라는 그룹의 ‘습관’ 이라는 노래가 나왔었다. 이 노래의 백미는 단연 가사 한 소절에 있는데, 유독 이 한 소절만큼은 정확하게 기억나서 아직도 때때로 비슷한 상황엔 종종 유용하게 써먹게 된다.….”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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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모양의 보석을 주로 사용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형태의 난집을 짜게 된다. 요놈, 별스럽고 다양한 모양의 보석들에 금속을 온전한 형태로 이어 맞추는 작업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 어지간히 성질 나쁜 사람도 웬만하면 그 성질 죽이고 보석 비위 살살 맞춰가며 도 닦듯 작업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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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도 속된 표현으로 ‘예쁜 것이 제 얼굴 값 한다.’는 말은 그대로 사용이 되니, 참으로 이렇게 서로 제 잘난 맛에 얼굴 값 하는 이쁜이들 비위 다 맞추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다. 제 마음에 꼭 들게 제 집이 잘 짜여지지 않으면 세팅 과정 중에 깨지거나 상처가 나는 등의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유난히 까다로운 보석을 금속에 제대로 물리는 일은 분명 수월한 일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쓰라린 경험 한번쯤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두고두고 쉽게 잊지 못할 아픈 추억이기도 하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분명 수 십 번 정도는 쓴 추억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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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정밀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난집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든 보석이나 난집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세터들에겐 거의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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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작업대를 소하며 은 자투리 모아두는 통에서 이렇게나 많은 잘려나간 여분의 난집들을 발견했다. 나에게도 예외 없이 재앙의 순간들은 있어줬었고…그래서 언제부턴가 난집을 넉넉하게(?) 재단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귀금속 세공 분야에서 필요 없는 금속을 여분으로 넉넉히 재단하는 것은 결코 좋은 습관은 아니다. 이게 버리면 딱 좋은 나쁜 습관이라는 걸 안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리고 고치고자 노력한지도 또한 꽤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제쯤 정확히 재단하여 여분의 난집 자투리가 남지 않도록 할 법도 한데 십 수년 간 굳은 습관은 노랫말대로 참 무섭다.
 
나는 가끔씩 주변 사람들에게 ‘편도핵’ (amygdale, 아미그달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의외로 뇌의 구조는 단순하다고 한다. 뇌는 밑에서부터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신피질' 구조로 되어 있다. 긍정적인 기억데이터를 담당하는 부분은 중간층에 해당하는 대뇌변연계이다. 대뇌변연계에는 1.5cm쯤 되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조직으로 감정과 관련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편도핵이라는 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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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싫은 감정이나 유쾌함, 불쾌함 등은 이 편도핵에서 결정된다. 편도핵이 받아들인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뇌에 깊이 새겨진다. 안 좋은 감정이나 부정적인 기억도 편도핵이 유쾌한 데이터로 바꾸면 우리의 기억 저장고에는 재밌고 긍정적인 기억 데이터들만 쌓이게 된다. 이처럼 주로 감정과 관련되는사건은 편도핵을 중심으로 우리의 유전적인 구조기억과 의식에 의한 피드백으로 장기기억으로 유도가 된다고 한다. 감정적인 사건을 겪었을 때 우리가 좀처럼 쉽게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다.
 
나는 가끔씩 내가 작업에 대해 갖는 생각, 혹은 나의 작업 습관과 내 머릿속의 편도핵에 대해 생각해본다. 유난히 싫은 작업, 혹은 유난히 좋은 작업… 유난 맞은 습관들은 언제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편도핵은 아마도 일련의 작업경험들을 감정적 경험으로 변환시켜 내 허락도 없이 나의 뇌 속에 저장시킨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아마도 십 년이 넘도록 계속 반복하고 있는 나의 이런 습관들은 나의 편도핵이 언젠가 있었을 재앙의 현장을 기억해두고 다시는 겪지 않겠다는 의지의 흔적으로 저장해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고쳐야 한다고 여기는 못된 버릇을 고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기억의 저장고를 싸그리 비웠다가 다시 저장해야 하는 엄청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애초에 나의 난집 짜는 작업이 조금 덜 수고롭고 조금 덜 공포스럽고 조금 덜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어쩌면 늘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늘 밤샘작업으로 일관했던 나의 작업경험들이 아직 나의 편도핵을 긴장 상태로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참 습관은 무섭다. 오늘부터 나의 뇌 속 편도핵에게 열심히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 다시 나의 작업이 공포스럽고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받는 일로 저장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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